내가 겪은 전쟁 한마당 <루카 21, 20-28> 11월 26일

나는 군인으로 전쟁의 분위기를 경험하지 못했어도 전쟁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인지 16살에 전쟁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죽음도 보고 공포도 느꼈습니다. 6.25가 일어나던 해에 인천 세관의 급사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30명의 직원이 세관을 지키는 당번에 들어가 세관에서 숙직하는데 아침 녘에 길에서 전차 소리가 나고, 군인들이 줄지어 큰길을 지나가는데, 창밖을 보니 “큰일 났다. 저 군인은 국군이 아니라, 인민군이네” 이북에서 본 군인 복장과 철모가 바로 인민군이었습니다. 전날 밤에 라디오에서 서울에 들어온 인민군을 쫓아냈다는 가짜 뉴스가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인천까지 올 줄은 몰랐습니다. 세관 안에는 작은 통신 부대가 있었는데 인민군 대열을 구경나온 잘 아는 군인에게 지나가는 인민군이 “너 누구냐?” 이 군인은 국군인 줄 알고 “나 국군이다.” 갑자기 총소리와 함께 세관이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지나가던 인민군이 세관을 급습하며 총을 쏘고 쳐들어와서 저는 방 안 제일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민간인은 죽이지 않으니 나와라. 아니면 쏜다.” 해서 믿고 나오는데 3명의 세관 직원이 모두 불려 나와 길가에 서게 되었습니다. 나올 때 손을 들고 나왔습니다.

나와 보니 좀 전에 구경하던 군인은 총을 맞고 숨 쉴 때마다 피가 솟구쳐 오르며 죽어가고 있는 현장에서 세관 직원들 줄 세워 권총을 들고 하나하나 총으로 가리키며 “너는 뭐하던 사람이냐?” 하고 물어 오다가 앞에 와서 “동무는 무슨 일 하였소?” “급사 일을 했습니다.” 손을 보자고 해서 내미니 “동무는 진짜 노동자요”하고 칭찬하며 “열심히 일하라 구여!”하고 계속해서 세관을 지키라 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모두 집 일이 걱정되어 집으로 갔습니다. 우리 집은 시내에서 10리쯤 떨어져 있고 큰집이 가까이 있어서 들렸더니 “네 아버지는 약아서 벌써 도망갔으니 우리하고 함께 피난 가자” 하셔서 즉시 피난길에 짐을 지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가족 걱정이 앞서 길을 가다가 환상이 보였습니다. 조금 가다가 저기 아버지가 보여 쫓아가면 아니고, 어머니가 보여 가보면 아니었습니다. 수인을 따라가는데 가다가 밤이 되면 아무 집이나 헛간에서 잠을 잤습니다. 가면 갈수록 인민군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로 밀려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을 떠나지 않고 나를 찾아 세관을 몇 번이나 가셨는데 사체가 있으니 아들 죽었다고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쟁 마당을 겪으며 1·4후퇴까지 인천에 있다가 중공군이 쳐들어오니 그때는 저만 배를 타고 제주도, 부산으로 피난 갔다 돌아갔습니다.

전쟁은 두려움, 혼란, 불안, 공포에 쌓인 분위기이며 도망가지도 못하고 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며 전쟁 중에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지만, 여기까지 보호해주신 하느님의 섭리는 제가 이렇게 살도록 준비해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이 아니라도 이와 같은 조건이 우리를 공포와 혼란 속에 살도록 해서 당황하게 합니다. 속담에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했듯이 자기 있는 곳에서 안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또다시 이런 불행이 모두에게 닥치지 않기를 기도하며 전쟁보다 평화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