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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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9-20 13:42
왜관수도원 봉헌회 제3차 유럽수도원 성지순례기 (8) - 수비아꼬 수도원 (2/2)
 글쓴이 : 한선희 브리짓다
조회 : 7,642  

5월25일 (맑음).

   (하층 성당) 하층 성당으로 내려가니, 베네딕도 성인과 관련된 그림이 많이 있었습니다. 교황 인노센트 3세(pope Innocent III)가 그려져 있는데, 이 교황은 1203년에 거룩한 동굴에 은혜를 베푼 교황이라고 합니다. 그 옆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그림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비잔틴 영향을 받은 13세기의 그림이라고 합니다.

   다른 궁륭에도 베네딕도 성인의 젊은 시절에 관한 그림이 있는데, '유모가 깨드린 그릇을 기도로 붙임', '수비아꼬로 달려오는 젊은 베네딕도', '수도복 받음'  등의 그림이 있았습니다. 이외에 '마오로 성인에게 물에 빠진 플라치도 성인을 구하라고 하심'과 '물에 빠진 낫을 낫자루에 붙이시는 그림' 도 있었습니다.

   다른 문 주위에는 맨 위에 '예수 그리스도', 왼쪽에 '베네딕도 성인', 오른쪽에 '스콜라스티카 성녀', 그리고 '채의 기적',  '독이든 빵을 새가 물고 가는 그림',  '그레고리오 대 교황이 수도승에게 은혜를 베품', 등이 있고, 천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천사, 성인들'의 그림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하층성당 입구와 천장)                        (확대, 수비아꼬로 감, 수도복 받음, 그리스도 찾음)


   하층성당을 나가니, 바로 옆에 좁은 동굴이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거룩한 동굴(Sacro Speco)의 심장인 젊은 베네딕도 성인이 기도하며 은거하셨던 곳이었습니다. 하느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깊은 동굴, 바로 이 자리에서 베네딕도 성인이 수도하셨던 것입니다. 팔을 십자로 가슴에 얹고, 십자가에 눈동자를 고정한 채 앉아 있는 젊은 성인의 조상이 있었습니다. 성인의 위에는 수도원을 상징하는 12개의 등이 있었습니다. 1657년 안토니오 라지(Antonio Rggi)가 성인의 조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 역사학자는 이곳을 이렇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동굴안 바로 여기에서 수많은 수도승과 덕을 갖춘 거룩한 성인이 나왔고, 위대한 승리를 교회에 가져왔다. 그리고 이 동굴에서, ‘베네딕도 규칙서’ 를 통하여, 위대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 문화의 꽃이 피어났다 (Monalembert, 1877)."


 

(베네딕도 성인이 수도하신 곳)


   (그레고리오 경당) 하층성당에서  나선형으로 감긴 계단을 오르면 성 그레고리오 경당이 있었습니다. 입구에 프란치스꼬 성인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이 성인도 “평화 PAX” 라는 글을 들고, 허리에 줄을 매고 맨발로 서 있는데, 후광도 오상도 그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오상을 받기 전, 1224년전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고, 프란치스꼬 성인이 여기에 그려져 있다는 것은 이 경당이 축성될 때, 이곳에 있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합니다. 이 경당은 오스티아의 추기경 우고리노(Ugolino)가 축성해서, 그의 모습이 문 옆에 그려져 있었고, 이곳의 그림은 13세기 비잔틴의 영향을 받은 로마 화풍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래쪽에 '옆 가슴에서 피 흘리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15세기 안토니아조 로마노(Antoniazzo Romano)의 그림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                  (성인의 얼굴, 확대)


   (성모 경당) 성 그레고리오 경당에서 ‘거룩한 계단(Scala Santa, Holy Stair)’을 내려가면 성모 경당이 있었습니다. 이 경당은 ‘성모 마리아’와 ‘죽음’ 이 주제이었습니다. 성모송 “은총이 가득하신... 저희 죽을 때에... 빌어주소서” 에 죽음에 관한 기도가 들어 있는 것과 같이, 이 경당은 성모 마리아와 죽은 이를 위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여기 그림은 상층 성당과 같이 모두 14세기 시에나 학파(school of Siena)가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 경당에 들어오면, ‘죽음의 승리’ 그림이 있었습니다. 말을 탄 죽음의 기사가 사람을 밟아 죽이고, 목 바로 뒤에서 찌르고 있는 데도, 사람들은 죽음을 모르고 제멋대로 떠들고 산다는 의미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은둔자 성 마카리우스(Hermit St. Macarius)의 가르침”인데 성 마카리우스가 젊은이들에게 ‘사람은 죽으면 아름답던 모습도 결국에는 해골로 변하고, 흙으로 돌아가므로, 거룩한 생활을 하라’고 가르치는 그림이었습니다.


     

                (죽음의 승리)                           (죽음에 대한 성 마카리우스의 가르침)


   또 다른 그림은 ‘무고한 어린이들의 죽음’ 인데, 왼쪽부터 읽어보면, 헤롯왕이 지시하고,  병사들이 무고한 어린이들을 칼로 쳐 죽이고, 어머니들이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성모 마리아의 수태고지(Annucitation)', '하늘에 올라 예수 그리스도 옆에 있으심(Coronation)’, '성전에 아기 예수를 바치심', '교회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선종과 승천’ 그림이 있었습니다. 


       

           (무고한 어린이들의 죽음)               (성모 경당에서 설명, 최 빠꼬미오 신부)        


   (양치기 동굴) 성모 경당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양치기 동굴이 있었습니다. 이 동굴은 베네딕도 성인을 발견한 양치기들에게 처음으로 가르치신 곳이라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고  성인 두 분이 그려져 있었는데, 9세기 비잔틴 그림으로 여기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었습니다. 


     

  (양치기 동굴의 벽화)             (벽화 확대,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식당) 그리고 김 마티아 수사는 식당과 집회로 사용되었던 방을 특별히 보여주었습니다. 이 방은 일반에게 공개하는 방이 아닌데, 특별히 우리를 위하여 보여주었습니다.   제대 앞 그림에는 ‘수난전 최후의 만찬’ 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왼쪽에 앉아서, 성 요한을 안아주시며, 오른쪽 제자들을 바라보십니다. 유다는 식탁에 앉지 못하고 땅에 앉아 있습니다.

   제대 맞은편 그림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중앙에 있고, 그 옆에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그리고 성녀 스콜라스티카, 성 그레고리오, 성 아우구스띠노 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제대 앞에서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바쳤습니다.


    

(김 마티아 수사의 설명)                (식당 제대 앞,  기념촬영)


   (장미정원) 밖으로 나가니 장미정원이 있었습니다. 붉은 꽃이 핀 장미는 유혹을 받을 때, 여기 오라는 듯 날카로운 가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장미정원 위에 벽화가 하나 있는데, 베네딕도 성인 앞에서 프란치스꼬 성인이 장미나무를 접붙이는 프레스코 그림이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접을 붙여 나가는 상징 같았습니다.

   이 장미정원 위에 높은 탑이 있고, 탑 위의 높은 바위에서 로마누스(St. Romanus) 성인이 베네딕도 성인에게 음식을 내려주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장미정원과 벽화)            (벽화 확대, 성 베네딕도와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뒤뜰에 가니, 베네딕도 성인이 산위의 바위를 손으로 막는 모습을 한 조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탈레오 산의 바위가 무너지지 말라고 지난 세기에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조상 앞에서 휴식하였습니다.


    

(바위를 막는 성인과 함께)                                  (수도원 뒤뜰에서 휴식)


   우리는 성물방에 들려서 기념품을 사고, 한국에서 가져온 “맛있는 라면”을 성 안셀모의 두 신부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두 신부는 절반을 김 마티아 수사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김 마티아 수사와 작별하고, 버스로 로마 시내의 한국식당(Korea Restorante)에 와서, 오랜만에 밥과 불고기, 돼지수육, 된장찌개, 김치와 포도주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녁식사후 성 안셀모의 두 신부와도 작별하고, 다음날 로마 시내에 있는 성지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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