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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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8-30 19:18
왜관수도원 봉헌회 제3차 유럽수도원 성지순례기 (4) - 휘트/성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
 글쓴이 : 한선희 브리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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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1일 (흐림). 
   
성 오틸리엔 수도원을 떠나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영화 'Sound of Music' 에 나왔던 미라벨 정원과 카타콤베, 대성당, 베드로 수도원, 모차르트 생가를 구경하고, 오후 5시30분경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방에 있는 휘트(Stift Fiecht) 수도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알프스의 봄프(Vomp) 지방에 세워진 휘트 수도원은 흰 눈이 쌓인 높은 산 밑의 초원에 세워진 양파같은 종탑을 가진 붉은 지붕의 하얀 수도원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봉헌회원은  준비해온 순례책자로 저녁기도를 하였습니다.

   수염을 길게 기르신 라트홀트(Rathold Kleinloh) 수사가 우리를 반겨주시며, 저녁식사 시중을 들어 주셨습니다. 라트홀트 수사는 “왜관 수도원의 보나벤뚜라 수사가 ‘왜관 봉헌회원이 가면, 최대로 잘해 달라’고 전화로 부탁하셨다” 하고 말씀하셨고, 안셀모(Anselm Zeller) 아빠스는 “왜관수도원 봉헌회원의 방문을 환영하며, 작년 100주년 기념식에 왜관수도원을 다녀왔는데, 아주 인상이 좋았습니다. 그곳에서 신학생 시절 함께 공부했던 보나벤투라 수사와 허 헤르베르트 신부를 다시 만났으며, 이 그레고리오신부도 왜관에서 만났는데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봉헌회원이 많지 않은데, 이곳에 많이 남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저녁식사 후, 수도원 밖을 거닐며, 1,900~2,500m의 산봉우리에 흰 눈이 덮이고, 그 아래 초록빛 초원과 붉은 집들이 연이어져 있는 마을을 감상하였습니다. 그리고 라트홀트 수사의 허락을 얻은 후,  수도원 모임방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grand piano)로 우리 성가를 조심스럽게 연주하여 보았습니다. 맑고 은은한 음색이 울려 나왔고, 연주후 피아노를 깨끗하게 닦아두었습니다.   


        

   (휘트 수도원)           (종탑과 성당, 야경)        (안셀모 아빠스의 환영사)


5월22일 (맑음). 
   순례후 처음으로 쾌청한 날씨이었습니다. 아침 6시30분 피정집 모임방에서 아침기도를 봉헌하였습니다. 아침식사 중, 안셀모 아빠스께서 성 게오르겐베르크(St. Georgenberg) 수도원과 인스부르크(Innsburg)를 잘 구경하라고, 저녁식사를 6시에서 7시로 늦추어 주었습니다. 성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은 상당히 높은 알프스 산속에 있어서, 버스로 산 중턱까지 가고, 그 다음 오솔길은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길에는 순례객을 위한 "십자가의 길" 14처가 그림으로 모셔져 있는 안내판이 서 있었고, 묵상할 글귀가 적힌 안내판도 서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세상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끊임없이 기도하면 기적이 있을 것이다”,   “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 살지라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모두에게 공평하다. 살기위해 노력하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Ganz gleich was das Leben dir auch an Schwierigkeiten auferlegt, die Welt ist immer noch schön. Versuche auf ihr zu leben und glücklich zu werden)” 등, 여러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휘트/게오르겐베르크 위치)   (성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 가는 길)       (바위에 세워진 수도원, 성지순례지)


   바위위에 세워진 성 게오르겐수도원에 도착하자 입구에 “베네딕도회 수도원 성 게오르겐베르크 - 휘트, 성지순례지(Benediktinerabtei St. Georgenberg - Fiecht, Wallfahrtsort)” 라고 표시되어 있었고, 성당입구 벽에 "아베 마리아 그라치아 플레나(Ave Maria Gratia Plena)” 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오전 10시 미사를 마치고 난 후, 라파엘(Raphael Gebauer)신부가 성 게오르겐베르그 수도원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성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은 10세기 중반(954) 바이에른 지방의 귀족인 라트홀드(Rathold von Aibling)가 동굴에서 수련을 시작한 것이 이 수도원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유행대로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올 때, ‘돌아가신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상(피에타, Pieta)을 가지고 왔는데, 이 피에타 상이 현재 성당 전면에 모셔져 있습니다.  1138년 4월 30일 인노센트 2세 교황이 이 수도원을 성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인가하였습니다. 그리고 1310년 미사 중에 ‘성혈의 기적’ 이 일어났고, 그 성혈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은 현재에도 ‘라임나무 아래의 슬픔의 어머니’ 뿐만 아니라 ‘성혈의 기적’이 있었던 순례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라파엘(Raphael Gebauer) 수사신부는 제대에 보존하고 있는 성혈을 보여주었습니다.


       

     (성당 입구)                                  (피에타 상)                          (성혈기적 설명, 라파엘신부)


   “성 게오르겐베르그 수도원은 1284년 6월, 1448년 11월, 1637년 6월 및 1705년 10월 등 네 번의 큰 화재가 발생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2명의 수사만이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고, 수도원이 감옥으로 사용되는 수난도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빈(Wien)의 멜키올 크레슬(Melchior Klesl) 추기경이 개신교의 입장을 동의하자, 이 추기경을 1619에서 1622년까지 이 수도원에 감금했고, 이곳 수사들은 경비병 24명과 지내야 했습니다.”

   “1705년 10월 31일, 수도원은 4번째 화재로 잿더미로 변했지만, 다행히 성모 마리아 상과 귀중한 서적과 성물들은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 게오르겐베르크에서 수도생활은 마감하고, 산 아래 휘트에 새 수도원을 짓기로 결정함으로서, 성 게오르겐베르그는 순례지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성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은 1733년 마을 주민과 신자들의 열망에 의하여,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이 수도원은 야고보 성인(St. Jakob)과 게오르그 성인(St. Georg)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높은 제단은 1734년 요한 미카엘 휘셔(Johann Michael Fischer)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섯 개의 타원형의 은쟁반과 피에타의 성모상은 성모님의 일곱 가지 고난과 슬픔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맨 위에 성 바오로 상이 세워져 있고, 높은 설교대도 1738년 휘셔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로로코 양식의 뛰어난 작품입니다. 성당 좌측의 지구본을 받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을 상징하는 세 손가락이며, 지구본 위에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4대륙을 상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수도원은 게오르그 성인의 유해를 모신 곳이며, 성당 주위에 여러 성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순례하고 있고, 약 20명이 머무를 수 있는 피정집이 있고, 저 혼자, 은수적으로 살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대, 성모칠고와 십자가)           (지구를 받치는 하느님의 손)      (성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 기념촬영)


   휘트 수도원에 돌아와 국수와 닭죽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푸딩을 먹었습니다. 라트홀드 수사가 흰 앞치마를 하고 홀로 시중들어 주었습니다. 오후에는 인스부르크(Innsburg)로 가서, 시내와 대성당을 보고, 인 끌레멘스 신부의 제안으로, 케이블 카(cable car)를 타고 흰 눈이 쌓인 ‘제그루베’ 고지(Seegrube 1,905m)에 올라가서 인스부르크 시내를 내려다보며, 흰 눈을 즐겼습니다. 이것은 일정에 없었던 것이어서, 각자 25유로(euro)씩 지불하였습니다.


5월23일 (맑음).
  
오전 5시, 휘트 수도원의 작은 경당에서 약 10명의 수사님들과 함께 아침기도를 하였습니다. 이곳은 안티포날레 I 을 작은 전자오르간으로 반주하며 노래로 기도하였습니다. 아침식사 후, 수도원과 박물관에 대하여 안내를 받았습니다.

   이 수도원은 산위에 있는 성 게오로겐베르크 수도원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여 안전한 아래쪽에 새로 건설하여 정착한 곳으로, 수도원 2층 복도에는 성경과 베네딕도 성인과 관련된 그림이 걸려있었고, 1층 복도에는 한국과 아프리카에서 온 기념품, 고생물 화석, 그리고 현대화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성 게오르겐베르크 수도원의 화재원인에 대하여 기록은 없지만, 고산지대이어서 낙뢰로 인한 산불로 생각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당건물 맨 위에는 해시계가 있었고, 종탑의 종소리가 성당안으로 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종탑벽은 약 2m로 아주 두껍게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설립 당시인 950년경부터 지금까지 역사가 도표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1138년 인노센트 2세 교황이 성 게오르겐베르그 수도원을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인가한 문서와 교황의 문장이 있었고, 필사된 그림이 그려진 성경과 15세기 4선악보의 그레고리오 성가집이 있었는데, 모두 가죽에 필사된 것이었습니다. 성인의 유해를 모신 함(遺骸函)으로 대축일에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레리꾸아리(reliquary), 상아지팡이 위에 은을 도포하여 만든 하트만(Hartmann) 주교의 지팡이, 티롤(Tirol) 지역의 크리스마스 구유, 교황의 편지, 성상, 성화 등, 유물이 아주 많이 있었으며 정말로 값진 박물관이었습니다.


         

   (휘트 수도원 박물관 안내)          (박물관에 보존된 성경)        (박물관에 보존된 그레고리오 성가집)


   이날은 성령강림 대축일이어서, 오전 9시30분, 아름다운 바로코 양식의 수도원 성당에서 이곳 본당신자들과 함께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마침 견진성사도 있는 날이어서, 견진받는 어린이들은 곱게 차려입고, 가족과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미사 서두에서, 안셀모 아빠스는 한국에서 온 왜관수도원의 봉헌회원들을 본당신자들에게 소개하고, “미사를 함께 봉헌하게 되어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미사 중에 제1독서는 본당신자가 독일어로, 제2독서는 인 클레멘스 신부가 우리말로 하였습니다. 미사 중에 작은 합창단과 플릇, 기타, 전자피아노로 구성된 악단이 성령강림 대축일과 견진성사 축하연주를 하였고, 파견에는 “성가 제77번, 주 천주의 권능과” 를 오르간이 반주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도 미사 중에 오르간만 아니라, 성악이나 다양한 악기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성을 음악에 실어 기도로 표현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안셀모 아빠스와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성령강림 대축일 미사)             (안셀모 아빠스와 함께)             (미사후 기념촬영)


   이 성당은 바로크 양식이지만 비잔틴양식도 일부 섞여 있었으며, 제단의 받침대에 세 개의 마름모꼴 조각이 있었는데, 이것은 김대건 안드레아, 죽음의 수용소에서 선종한 유럽신부, 아프리카 신부를 상징하는 것이며, 여기에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신자들이 앉는 의자는 제작당시 남녀가 각각 따로 앉도록 만든 것인데, 여자석은 ‘예수의 생애’, 남자석은 ‘베네딕도 성인’에 대하여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미사후 성당밖에서 성령강림 대축일과 견진성사를 축하하는 파티가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 안셀모 아빠스의 환송인사가 있었고, 수도원 설립자를 존경해서 수도명 을 “라트홀드”로 바꾼 라트홀드 수사는 “왜관수도원은 이제 나의 중요한 친구가 되었다”고 하시며, 버스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며 환송해주셨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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