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 전에 찾아온 수도원 성당 지하창고 <루카 2, 16-21> 23년 1월 1일

부산에서 사제가 되려고 어떤 천사 사제를 만나 의논하니 왜관으로 가보라고 하기에 찾아왔던 당시 전경은 구 성당, 구 사제관, 그리고 수도자들의 삶은 집도 없이 성당 지하창고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원장 신부님은 사제관 위층, 본당 신부님은 아래 지하실에 거처하시고 지금 수도원이 서 있는 자리는 감밭이고 남루한 옷을 입고 소를 몰며 땅을 갈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북쪽 원산에서 바라보던 수사 신부님들이 살고 있었지만, 저는 그들과 함께하려고 이 수도원을 선택하고 멀리 떨어진 집에 가서 미사와 기도에 참례하며 아침에 신부님들이 개인적으로 드리는 미사에 복사를 서면서 일 년을 지냈습니다. 신학교 들어가서도 있을 곳이 없어서 방학 때는 부산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수련받고도 수도원에 살지 못하고 신학교와 집을 전전하다가 종신서원하고 수도원에 제 방이 하나 생겨서 어설프나마 수도자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마오로관, 겨우 수도원 수사님을 위한 비테리 하우스란 작은 수사님들 집이 생기면서 방학 때도 더러는 수도원에서 살았습니다. 이름 보고, 덕원에 사시던 수도자들의 삶을 보고 함께 살기 시작하여 68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바로 찾아왔었구나. 보기에 초라하고, 준비되지 못하여도 1,500년의 역시와 전통, 업적과 성과를 보면서 70년을 살아왔습니다. 망설임은 있었어도 떠나지 않고 성령의 지시를 따라 이렇게 살다 보니 이 집이 나의 집, 나의 안식처였습니다. 이제 나이 90이 되어 살고 있으면서 감사와 찬미하는 삶의 연속입니다. 저는 인사이동을 해도 1954년도에 주민등록을 왜관 수도원에 등록하고 지금껏 한 번도 옮기지 않고 칠곡 왜관 주민이며 수도원 수도자입니다. 잘살고 있느냐 아니냐는 별개 문제로 주님이 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올해 사제서품 60년이 되었고, 서원한 지는 63년이 되었지만, 부끄러움은 있습니다. 무엇 하나 뛰어난 일한 것 없고, 아는 것 하나 없고, 특별한 공적도 없으며 시간만 보내고 자리만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주님과 함께 살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나의 생명이고 근원임을 알고 따라 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 사랑하려고 마음먹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난하게 오셨지만, 진실과 사랑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세상에 오신 주님을 알고 믿으며 희망하고 사랑할 수 있는 분을 여기서 배우고, 느끼고, 체험하여 마치 천국 문 앞에 사는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오늘 목동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본 모든 것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 찬미하게 된 것같이 저도 여기서 외적으로 가난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던 곳에서 살고 배우고 따라 살게 된 것에 감사하고 찬미 찬양하며 그날까지 살고, 어제와 같이 내일도 오늘같이 조건 없이 주님을 사랑하면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