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 씻긴 죄와 물과 불로 씻긴 죄 <마태 21, 23-27> 12월 12일

더러운 것을 물이나 불로 깨끗하게 합니다. 그러나 물로 깨끗해진 것과 불로 깨끗해지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저는 수도원 안에 살면서 더러운 옷을 빨래로 내놓고 더러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빨래로 내놓은 것은 일주일 후에 깨끗해져서 돌아오고 쓰레기통에 넣은 것은 돌아오지 않고 불에 들어가 어떤 것은 타버려 없어지고 어떤 것은 녹여서 재활용하기도 합니다.

물로 씻긴 것들은 강을 따라 바다에 가고 불로 태워진 것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사라집니다.

오늘 복음에 요한의 세례와 주님의 세례를 문제 삼아 다툼을 보게 되는데 요한의 세례는 물로 주고 주님의 세례는 물과 불로 주는 것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물로 죄를 사함과 불로 죄를 사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자비가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비와 사랑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자비는 죄를 물로 씻어내는 것이라면 사랑은 불로<성령> 죄를 없애는 것입니다. 자비는 반복되는 행위로 옷을 빨듯이 다시 더러워지면 세탁소에 가는 것과 같고 불로 깨끗해진 것은 다시 더러워지지 않아 흔적도 없이 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로 받는 세례와 물과 불로 받는 세례는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죄를 사면 받는 사람과 사면복권을 받는 사람이 다른 점과 같습니다. 자비와 사랑을 갖고 살아가야 자신 안에 다른 이로부터 받은 상처를 깨끗하게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것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주님이 권한입니다. 물로 씻은 것은 강물 따라 바다에 머물고 불로 세례받은 것은 불에 타서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갑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같이 우리 사이의 탓에 자비를 베풀고 사랑해야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 하느님 나라에 살게 됩니다. 저는 지금껏 미사 시작에 자비송으로 죄의 용서를 받는 자비의 은총과 영성체 때 하느님의 몸과 피를 받으며 사랑의 은총을 받는 것을 같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약간의 차이도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자비와 사랑의 구별을 바르게 하면서 자비의 은총과 사랑의 은총을 받아서 미사 끝에 나는 없고 주님만 남아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없어지고 주님만 내 안에 살아야 함을 깨닫고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살아가기로 새롭게 결심하였습니다. 하느님 사랑으로 태어나고 하느님 사랑으로 살며 하느님 사랑 안에 영원히 머무르기를 기도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주님처럼 “아버지, 저들이 하는 바를 저들이 모르니 용서해 주십시오.” 나를 죽이는 사람을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비와 사랑을 구별해서 생각하고 자비와 사랑을 마치 물과 성령으로 세를 받는 것같이 살아갈 때 안드레아 김대건 성인같이 자기 목을 치는 사람을 향해 “내 목을 어떻게 내놓으면 치기 쉽습니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 어려운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만이 참 하느님의 사람이며 믿음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