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는 자 만이 영의 소리를 따른다. <마태 10, 16-23> 7월 9일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찬 그릇에는 썩은 냄새만 나고 빈 그릇에 새것을 담아야 향내도 나고 신선한 향이 풍깁니다. 세상일에 몰두하다 보면 온갖 잡동사니가 마음에 쌓이고 버려야 할 일들이 꽉 차서 지혜롭고 깨끗한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하신 말씀은 지혜롭고 순박하게 사는 사람은 하느님 영의 힘으로 산다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문초를 받거나 반대자에게 어려운 질문을 받았을 때 자기 생각으로만 대답하려면 지혜롭지도 못하고 순수하지도 못하여 말의 뜻이 서지 않습니다. 거짓말이나 남을 속이는 말은 오래 가지 못하고 드러납니다. 진실과 사랑이 결핍된 말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영은 순수하고, 깨끗하고, 순리에 맞고, 정의롭고, 공번되게 나타납니다.

순교자들은 순교에 앞서 복잡한 일들을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담아두고 말을 하려면 진실과 사랑의 말이 나오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 깊은 곳에서 온갖 것이 일어나 망설이고 주저하면 슬기롭고 순박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학생 때 교가에 “깨끗이 이 한 청춘을 하느님께 바쳐서”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부른 노래가 지금 마음에 와닿고 ‘일생 깨끗이 한 청춘을 바치고 살았나?’ 반성이 됩니다. 이것저것 살피고, 찾고, 쫓아가고, 길을 잃고 방황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깨끗하게 시작한 일을 지속해서 살지 못한 삶을 뒤돌아봅니다. 모두가 세례성사 때 한 고백과 약속을 마음을 비우지 못해서 지혜롭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한 점을 스스로 반성의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살고 있지만 얼마나 주님 아닌 것에 마음 쓰고 살고 있는가?

온갖 욕망이 일어나고, 세속의 이해관계 속에 너와 내가 서로 분열됩니다.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기회 있을 때마다 불평불만으로 인간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면 하루빨리 쓰레기통을 비우고 깨끗한 그릇 속에 하느님의 자비의 영을 담아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자비로워야 합니다. 하느님 일치의 영을 받아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신 것같이 공동체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지혜를 가지고 살고, 하느님께서 생명이며 사랑이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최후 순교 때 목을 내놓으며 “내가 이렇게 하면 목을 치기에 편한가?” 하고 자신을 죽이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그 순간에도 상대의 편함을 찾아주시는 참모습은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급하고 긴박한 처지에 있을수록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항상 감사와 찬미의 삶을 사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가 바로 당신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