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는 비우고 채우는 은총입니다. <마르코 1, 7-11> 1월 10일

세례자 요한은 물로만 세례를 주고,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줍니다. 쉽게 설명하면 더러운 그릇을 물로 씻어내고, 깨끗한 그릇에 새로운 것을 담아두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방에는 세면대, 샤워실, 화장실이 함께 있어 물이 나오는 구멍이 세 개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냅니다. 세례 때 물은 인간 안에 있는 원죄, 본죄의 흔적을 깨끗하게 씻어내어 비우고, 새로운 힘을 받는 성령으로 채워 줍니다. 그릇을 씻고 비워만 두지 않고 무엇이든지 담아야 합니다. 아니, 비워야 다른 것을 담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 방의 세면대는 얼굴만 씻지 않고 사용한 컵을 씻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을 담아 마시기 위해서입니다. 세례 때 물로 이마를 씻고, 씻어낸 이마에 성 유를 바르면서 성령을 받게 되는데, 그 깊은 내용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왕 직, 사제직, 예언 직에 참여하는 능력을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령을 세례 때 받지만, 견진 성사는 성령을 공적으로 받았다는 표시입니다.

세례성사로 주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면 에페소서 3, 19 “하느님의 온갖 충만함으로 충만해지기 위함입니다.” 하는 것같이 악마 같은 것을 쫓아내고, 하느님의 자비 사랑으로 가득히 채운다는 말입니다. 그릇을 씻어 놓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먼지만 쌓입니다. 성경 안에 있던 집을 비질해서 깨끗이 치우듯 마귀를 쫓아내기만 하고 비워두면 또 다른 악마가 대군을 이끌고 다시 들어오면 처음만 못하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나쁜 것, 마귀가 다시 들어오지 못합니다.

수도자가 온갖 수련을 해서 자기를 비우고, 깨끗한 마음으로 봉헌해서 서원합니다. 서원을 지키지 않으면 다시 빈집이 되어 마귀로 가득 차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처럼 살지 않으면 세례의 효과는 없어지고 처음보다 못한 것으로 돌아갑니다. 대통령이 취임식 때 서약하고 서약을 지키지 않으면 대통령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성령으로 산다는 것, 성령으로 채운다는 것은 신자의 기본적 삶인 믿음, 희망, 사랑의 향주삼덕을 끊임없이 실천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느님 가까이 가고, 함께 살며, 희망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고,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없는 것이 채워지고, 사랑으로 끊임없이 자기 봉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를 내주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농부들도 이 이치를 잘 알고 겨우내 비워둔 땅을 봄에 갈고 일구어 빈 땅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풍요로운 추수를 합니다. 이처럼 세례로 모든 죄가 씻기는 은총을 받았으면 기도와 희생의 삶을 통해 각자의 삶이 지속해서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요사이 코로나로 성당에 못 가니 신앙을 잃어버리겠다고 걱정들 하지만, 옛날 박해시대 때 신자들은 더 열심히 자기가 있는 곳에서 기도와 희생을 바치면서 하느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몇 년 전 중국 북경에 있는 신학교에 두 번 가서 전국에서 온 신부님들 피정을 시켰습니다. 가서 느낀 점은 종교를 반대하는 중국 당국의 환경 속에서도 깊은 신앙의 열매를 맺고 사는 현실을 보고 놀랐습니다. 중심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살아 움직이고 연결고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느님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중국의 신자들이 자신에게 깊이 숨어든 성령의 은총을 충만히 받아 신앙이 보존되고 자라나도록 기도합니다.

물이 술이 되는 신비, 빵이 주님의 몸이 되는 신비, 포도주가 주님의 피가 되는 신비, 모두가 물로 씻겨 깨끗한 곳에 채워진 하느님의 충만함을 누리고 살기를 지향하고 있으니 따라 살기를 기도합니다. 비워야 채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