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하늘이 아니라 땅 깊이 심는다. <루카 14, 1. 7-11> 10월 31일

땅에 심어진 씨앗은 작은 싹이 터져 자라면서 온갖 과일을 달기도 하고 큰 나무 되어 집도 짓고, 온갖 고급 가구도 만들어 크고 높은 집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예술가의 손에 의해 아름답고 우아하고 많은 이의 찬송을 받는 예술작품이 됩니다.

씨가 “나는 높은 하늘에 심겨야 한다.”하고 땅을 피하면 씨앗 그대로 남아 자라지도 못하고, 결실도 내지 못하고 좋은 작품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주님은 “자기를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은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의인이 되고 덕스러운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덕의 근본은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마치 씨앗이 땅에 들어가 자신을 낮추고 움이 틀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높은 산에 오르려는 사람은 밑에서부터 오르듯 또한 박사가 되려는 사람은 “가나다” “ABC”부터 배워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시작도 가장 깊은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자신의 시작이 얼마나 작고 사람의 가장 깊은 데서부터 생겨서 이렇게 자라고 인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교만한 자세를 가지지 않아야 하고, 근본을 생각하며 더욱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시작을 뒤돌아보는 삶은 모든 것의 시작을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학문이든지 배우다가 막히면 시작부터 다시 보는 것같이 어떤 이가 신앙의 길에 막힘이 있으면, 혹시 잊어버려 신앙의 길을 가지 않으면 신앙의 기초부터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계시는가? 다 아는 것 같아도 잘 모르고 믿음을 살아온 사람은 교리를 아는 것 같아도 잊은 것, 분명히 몰랐던 것을 다시 반복해서 배워야 합니다. 두려움과 부끄럼 없이 시작해야 다시 믿음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길에서 길을 잃고 갈 곳을 가지 못하는 사람 만나서 상담할 때 아주 기초부터 묻고 응답을 듣고 참 진실과 사랑을 찾게 합니다. 집이 무너지는 이유는 기초공사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면서 시작과 마침이 얼마나 잘 짜여 있는지 오늘 묵상하다가 감사와 찬미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미사야말로 처음부터 시작하여 완성의 길로 인도됩니다. 자비 송은 우리 자신을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시작하게 합니다. 우리 각자의 죄를 뉘우치게 하고 불쌍히 보시고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시작합니다. 거름을 주고 영양분을 주시듯 말씀의 전례를 통해 주님의 말씀과 뜻을 전해 주시고, 우리를 하느님과 영적으로 하나 되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우리를 봉헌하는 시간을 가지고 빵이 주님의 몸이 되듯이 보잘것없는 나 자신이 주님으로 변화되어 세상에 복음을 전하러 큰 은총을 받게 하여 주님의 사람으로 복음 전파자가 되어 파견을 받습니다. 이 과정이 얼마나 신비스럽고 잘 짜여 있는지! 우리는 미사에 나와서 낮은 자가 큰 사람이 되어 세상에 파견됩니다.

오늘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가을은 지나 겨울이 왔습니다. 변함없이 자라나 큰 사람으로 살아 주님의 영광이 되도록 주님의 말씀 따라 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