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루카 11, 27-28>

사람의 가치는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사느냐?”로 드러납니다. 요사이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기가 죽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출생의 기원보다 현재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저는 12살에 이북 원산에서 다 버리고 남쪽으로 왔지만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산에서 나무하여 밥 짓고 군불 태우고 살다가 겨우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는 무상 교육이 아니라 월사금을 내야 졸업장을 주는데 졸업장도 없이 졸업하고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어야 온 식구가 살 수 있었습니다. 내 나이 14살, 16살에 인천세관 급사로 일했습니다. 6.25가 아니었으면 그저 그대로 노동자로 살다가 늙은 사람으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알고,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이유가 저를 이끌어 왜관 공동체에 부르셔서 수도사제로 살게 하시어 밤낮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로 살아 많은 형제적 관계 속에 강하나 약하나 함께하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게 하시어 60여 년을 살게 하시고, 오로지 하느님 계신 곳을 갈망하여 살도록 하시니 이것이 행복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수도원의 삶이 본질은 공평, 공정, 공유함으로 내 것은 없지만 내 것 아닌 것도 없어 불편함 없이 살아갑니다. 본당 공동체도 이런 정신으로 모여서 주를 찬미하고 믿음, 희망, 사랑의 삶을 산다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삶을 미리 사는 것입니다.

나만의 세상, 내 가족만의 세상, 우리끼리의 세상, 지식인만의 세상, 부자들만의 세상에 살지 않고 공평하고, 평등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세상은 이상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 성부, 성자, 성령으로 하나 된 하나이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 자유와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나라에 살고자 한다면 이곳은 아니며 저곳 하느님의 나라에서만이 가능합니다. 수도원이 피상적 징표이기도 합니다. 이런 공동체가 초대교회에서 실현되다가 지속하지 못하였지만 이런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하느님이 준비한 나라가 저 너머 있다는 것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며 사는 믿음의 삶은 행복합니다. 저는 하느님에게서 왔으니 하느님께로 가는 세상을 갈망하며 지금 말씀으로 전해준 뜻을 따라 살며 행복한 삶을 살다가 본향으로 돌아감을 믿고 알고 있습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고 오늘 하루도 시작하였습니다.

살아 있음에 감사 찬미 드리며,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