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생명 <요한 20, 19-31>

오늘날은 법과 규제에 얽매여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습니다. 힘없고, 돈 없고, 명성도 없는 사람은 작은 행동 하나도 법에 어긋나거나 관습을 벗어나면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도 무자비한 취급을 받아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자비를 베풀지 않고 받지 못하여 병들고, 자신을 잃고, 희망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고 하면 상호 간에 자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자비 축일입니다. 축일을 정하고 미사 때 뜻 모르는 자비송을 외운다 해도 자비심을 베풀 수 없다면 그 모든 행위는 위선입니다. “자비”는 사랑하고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자“는 사랑하며 산다는 말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남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여 자기 생명까지도 내어준다는 말입니다. “비”는 사람은 예외 없이 고통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생로병사” 외에 온갖 고통과 어려움에 시달리고 삽니다. 고통을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의무적이거나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들과 자비를 주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길가의 알지 못하는 외국인을 정성껏 돌보는 비유는 어떤 자비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십니다.

참 자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 말로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자기 자신이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보편적 자비가 가능합니다.

자기 자신이 고통의 늪을 체험하지 않으면 남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보고도 지나치고 자기 할 일을 먼저 하며 여유가 없는 옹졸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밑에서 깨닫고 중생 앞으로 나가서 자비를 부르짖고 불교의 도리를 창시하고 자비의 종교로 태어났습니다. 주님이 사람이 되시어 오신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신비로써 자비심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를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사랑이란 말로 힘들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한계와 조건 없이 고통의 의미를 깨닫고 자기 생명을 서로 나누며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