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려가야 한다. <요한 12, 24-26>

자신을 버리는 사람은 살고 자신을 버리지 않으려는 사람은 죽는다. 살기 위해서는 더 밑으로 내려가는 삶을 살아야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립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들어가 죽어야 한다고 하시지만, 밀알보다 땅이 그 밑에 있고 땅속의 거름이 그 밑에 있어야 밀알이 죽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는 밀도 아니요, 땅도 아니요, 거름일 뿐입니다. 더 내려가야 한다면 땅 깊은 곳에 지하수가 되려고도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수도원에 들어온 지 63년이 되었는데 해놓은 일은 없고 시간만 보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지난날을 되돌릴 수 없고, 거름 되고, 물이 되어 땅에 스며들어 가 죽어 열매를 맺는 후배들을 위해 골방에 들어앉아 희생하고 나를 내려놓은 일만 해야 합니다.

수도원 발전을 위해 기도하고 할 수 있는 희생을 바치며 슬픔보다 기쁨의 삶을, 분열보다 일치의 삶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하고,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 사는 진실한 삶을 살아가며, 믿음 희망 사랑을 증명하는 밑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오르려고만 하고, 부를 높이 쌓아두려고만 하고, 남보다 더 편하고 안락한 삶을 살려고만 하니 갈등, 불만, 적개심, 투쟁으로 내려가는 삶을 모르고 올라가려만 합니다.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죽으려는 사람은 산다는 원리를 모르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린이는 자기 위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은 것에 만족하고, 편한 것보다 불편을 잘 견디는 사람입니다.

더 순진하게, 더 성실하게, 더 깨끗하게 살아 하느님 아버지가 존중해주는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