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요한 15, 1-18>

땅에 뿌려진 씨앗이 싹이 터도 다 작물이 되는 것이 아니고, 과일나무에 핀 꽃이 다 과일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작은 열매를 보고 솎아내야 다른 과실이 크고 먹기 좋게 자라납니다. 밭의 작물도 싹이 돋아날 때 될 놈을 그대로 두고 시들한 놈은 뽑아 버려야 좋은 채소가 됩니다. 그래서 포도 농부인 하느님은 포도나무의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우리 속담에 "될 놈은 어릴 때부터 알아본다."라는 말이 사람이 되지 못하는 사람은 싹부터 잘라내라는 말이지만 여기 포도나무의 비유는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에 파견한 예수님을 세상의 구원자답게 하시려고 온갖 시련 속에서 구원에 반대되는 것을 정비하고 열매를 잘 맺도록 가꾸십니다. 또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안에서 장애물을 선별해서 선이 물들지 않게 악의 무리를 제거하시는 이유도 있지만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경고 말씀입니다.

우리 수도원에 입회한 사람들이 양성 기간을 통해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 선별해서 퇴원시키거나 권고하며 바른 열매를 맺는 나무로 만들어 냅니다. 저를 중심으로 수도원에 입회한 사람은 5명의 동급생이 있었지만 전부 나가고 혼자 남았습니다. 세속적으로 제일 부족한 사람이지만 아직 선택받아 주님의 포도나무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저도 포도나무로써 가지치기를 당하고 살고 있습니다. 악의 가지, 욕망의 무질서를 제어하고 잘라내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계속되는 가지치기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려나간 가지가 아니라 붙어 있으면서 매일 정화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농부이신 아버지께 감사하고 찬미드리며 살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