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성금요일>

한 시간 현양 제단 앞에 엎드려 기도를 시작하니 사람으로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중지하고 "어찌하여 주님은 그곳에서 매 맞고, 욕먹고, 조롱당하고, 죽음의 길을 가십니까?" 아무 죄도 없고, 바른말, 바른 행동 무죄한 주님이 차디찬 돌바닥에 앉아 추위와 피흐름 속에 온몸에 상처투성이 머리에는 금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기다리는 주님을 생각하니 할 말이 없어 멍하니 앉아 있노라니 주님이 먼저 입을 여시며 “나를 보고 울지 말고 너 자신을 보고 울어라.” 하시며 나를 보니 과연 내 죄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 그저 형식적으로 상대하는 사람, 진정한 사랑 없이 내 위주로 사람을 대하는 자세, 고통에 대한 거부감, 피하려는 비겁함, 게으름, 나태, 몸을 바쳐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겉꾸밈, 아니 위선적 행동을 반성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로움, 하느님과의 불일치, 하느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 못 하는 삶을 드리다 보니 나에 대해서도 말문이 막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번이고 주님이 주시는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겠다고 결심하고도 아직 십자가가 가까이 오면 피하려는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주님의 십자가 죽음에 깊이 빠져들어가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뉘우치며 주님의 위대한 십자가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날로 오늘, 내일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님 곁에서 십자가를 잡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게 하소서. 십자가를 품고 살게 하소서.

주님! 십자가에 흐르는 피와 물로 저로부터 깨끗하게 하시고 이 더러운 세상에 뿌려져 온 땅이 비옥하고 강물이 흐르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인 양 풍성한 열매 맺고 당신의 피에 젖어 죽음이 생명이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