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상 실명을 밝히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자리를 빌어서 과거에는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현재는 진심으로 이러한 경우를 겪게 된 것이 하느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메일은 제가 쓰는 이메일이니 연락주실 일있으면 이쪽으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세르지오 구티에레스 신부를 아십니까?

스페인어로 Fray Tormenta, 영어로는 Friar Storm 굳이 변역하자면 수도사의 폭풍, 보통은 마법사의 폭풍이라고 번역되는, 복면 프로레슬러로서 수천명의 아이들을 길러낸 멕시코 신부입니다. 그가 신부가 된 경위는 사제에 대한 열망이나 부러움, 혹은 이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세르지오 신부는 1945년, 가난한 집의 18명의 아이들 중의 하나로 태어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렸을 때부터 마약을 하며 항구를 배회하며 살았습니다. 어느날 곤경에 처해 도움을 구하러 성당에 갔으나 신부는 그를 내쫓았습니다. 그는 분개하며 훌륭한 성직자는 자신과 같은 불행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성직에 종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22세에 사제로 서품되어 로마와 스페인에서 교육을 받고, 한때 맥시코의 카톨릭대학에서 철학과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 신부님의 일화를 읽으면서 저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물론 저는 프로레슬러도 아니고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신부가 되고자 결정적인 이유는 사제에 대한 열망이나 어떤 모종의 부러움, 혹은 큰 이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점이 세르지오 구티에레스 신부와 같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아세례를 받고 한때, 한 본당에 14년간 다니면서 그곳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친구를 사귀며, 복사도 하면서 어찌 보면 본당의 오래된 신자들의 기도의 대상이 되는 전도유망한 학생이었습니다. 적어도 고3 때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고3 때 본당주임신부님이 바뀌시고, 아무 조건없이 저를 귀여워해 주셨던 본당신부님이 가시고 새로 오신 분은 신학교 교수출신으로 신학교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만을 가려서 동아리를 만드는 등, 우수한 사람만을 귀여워하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고3 때 친구들과 신학교 시험을 쳤으나, 낙방하였습니다. 저는 신부님께 찾아가 다시금 기회를 주십사 청하였지만, 신부님은 저의 성적을 알아보시고, 차기에는 추천서를 써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신부님은 본당에서 제가 인사를 해도 무관심하게 반응하시는등, 결국에는 저의 어머니 손에 교적을 쥐어주시면서 본당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큰 상처를 받고 한동안 성당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었지만, 다시는 성당 근처에도 가지 않으리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신앙에 대해서, 사람을 보고 믿었던 신앙이라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는 느낌, 그리고 정말로 신앙을 한다면 하느님께 대해 하는 신앙이라면 사람에게 상처를 입은 것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저버릴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그런 느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몇 개월 동안 쉬던 것을 접고 다시 성당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다니던 성당이 아니라 교적을 옮긴 다른 본당으로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예비신학생 모임 담당수녀님께서 수도회를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수녀님이 보시기에 원래부터 저에게는 수도회가 맞는듯 보였으나, 교구사제가 되어 후일 부모님을 제가 모시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제가 고등학생 시절에는 수도회를 추천해 줄 기회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수녀님께서 추천해 주신 두 곳의 수도회 중에서 한 곳을 택했고, 그 수도회에 입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동안 내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그 신부님을 용서하기 위한 많은 과정을 겪으면서, 처음에는 보란듯이 신부가 되어 그 신부님 앞에 당당히 서리라고 생각하였지만, 내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든 이렇게 수도회에 있게 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생각에 사제이기보다 먼저 수도자로서 제대로 살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고, 종신서원을 하면서 이제는 내 마음에 상처를 주었던 그 신부님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사제서품을 받으면서 서품과 첫미사 초대장을 그 신부님께도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쫓겨났던 그 본당에서 다시 첫미사를 할 수 있었고, 본당 선후배 신부님들과 이전부터 나를 알던 본당신자분들의 축복을 받았기에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처음에는 분명 모종의 복수심에서 사제가 되겠다고 생각한 바 있었지만, 나의 생각을 꿰뚫으시고 나의 마음을 너그럽게 만져주시어, 여러 체험을 통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치유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함부로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수도자, 사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그 신부님을 통해 얻은 마음의 교훈을 간직하고, 앞으로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나를 맡기며 살아가는 수도자, 사제 될 수 있도록 정진하며 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