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 <마르코 10, 28ㅡ31.>

오늘 복음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빈 그릇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그 안에 담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빈 그릇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없으며 준비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버렸던 것을 다시 주워담으면 첫째가 꼴찌가 되어 버립니다.

누구나 주님 때문에 모든 것을 버렸다가, 자신 때문에 다시 찾아 담는 사람은 주님 앞에 가장 작은 이가 되어 꼴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모시는 지성소입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을 모시지 않고 세상의 잡다한 것을 마음에 담는다면 그릇을 비울 필요가 없고 비운 것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 보는 사람은 밭을 제대로 갈 수 없고 씨를 심을 수 없습니다. 밭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땅을 잘 갈아 비옥한 땅을 만들어야 하듯이 빈 그릇을 준비 한 사람은 그 안에 가장 귀한 것, 주님이 담겨야 합니다. 저에게 아침 성체조배는 밤새도록 비운 나의 마음 안에 주님이 살아 계시도록 기도하고 모시는 시간입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새날 새 아침을 주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자유, 평화, 기쁨을 받아 오늘 하루를 만나는 사람에게 주님의 선물을 나누어 주도록 기도합니다.”

내 것은 주님의 것이고 주님의 것은 모두 내 것입니다. 자신을 비운 사람은 주님과 하나 됩니다.
어느 날 감기도 들고 해서 어느 수사님에게 "죽을 것 같다."고 말을 하니 "그것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느님 품 안에 갈 시간이 가까이 왔다는 말인데 죽겠다고 말을 하시지 말고 주님의 품에서 살날을 기다리며 기뻐해야 합니다." "아니 나는 주님의 품 안에 벌써 살고 있는데, 몸이 힘이 듭니다." 하고 속으로 고백하고 방으로 들어가 앉아 쉬었습니다. 마음을 다 비운 사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의 자리를 마련하고 특별히 성령께서 지켜주시는 가운데 빈 그릇에 성령이 항상 함께 살아 계십니다.

어느 순교 장에 10명의 순교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하늘에 열 천사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는 믿지 않습니다." 선언하는 순간 이를 보고 있던 관헌이 자기가 “나는 천주를 믿습니다.” 하고 뛰어나가 순교함으로 순교자 반열에 들어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마지막 순간에 꼴찌가 첫째가 된 일입니다. 지금 비록 뒤처졌다고 생각 들더라도 앞서 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고 살아갑시다.

오늘 저는 빈 그릇을 가진 이들이 언제나 주님의 성령을 가득히 받고 하느님의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