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믿음, 희망, 사랑을 주신다. <루카 24, 13-35> 4월 20일

주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며 전해주시는 은총은 하느님 향한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주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말을 듣고 보고 따르면 마음 깊은 데서 나의 존재를 알고 존재의 의미를 깨우치게 되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을 믿게 되고 희망하게 되고 사랑하여 모든 것을 바쳐 가며 살게 됩니다.

오늘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절망하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자들이 길에서 주님을 만나 희망을 갖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들을 만나서 자기들의 체험을 이야기하며 기뻐했듯이 우리도 어떤 절망 중에도 주님을 찾아 만나면 믿음, 희망, 사랑이 생기고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살게 됩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부활축일 후 엠마오 가는 것이 관례가 되어 본당이나 수도원에서 부활 축일 다음날 산책 겸 사순절 고행을 보상받은 것처럼 기쁨을 나누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올해는 수도원에서 지내려고 했는데 아빠스님이 점심 식사 후 한 바퀴 돌고 오자고 하셔서 대구 원거리 둘레 길을 돌기로 하고 나갔다 왔습니다. 길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차로 한 바퀴 돌아왔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차를 함께 타고 간 아빠스님이 주님이고 저도 아빠스님에게 주님이 되었습니다. 저는 길 안내도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듣고 해드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같이 일상생활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느끼고 살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즐겁고 행복합니까? 인생은 나그넷길이라 생각합니다. 마침표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세상의 인연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연은 나그네가 길에서 만난 사람처럼 끝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하고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은 바로 나와 함께 길을 걸어가는 같은 나그네입니다.

길을 걸으며 함께 가는 사람을 유심히 보시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행위를 보세요. 모두가 유익한 하느님의 모습을 한 사람입니다. 저에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수도원은 같은 모양을 한 사람 하나도 없지만, 함께 수도자의 길을 걷는 주님이십니다. 부모자식 간에만 인연이 아니라, 만나고 함께하고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공자님도 두 사람이 길을 걸어가면 그중에 한 사람은 나의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제일 무서운 것은 산속의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이 강도일 수 있고 나를 해치는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서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세상에 큰 재난이 일어나서 다 죽고 너와 나만 살아서 만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 만남은 큰 행운입니다. 서로 얼싸안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협력하여 나머지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 했습니다. 서로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관계 속에 하느님과 함께 살도록 합시다.

서로 믿고 희망을 품고 사랑하는 관계 속에 살도록 기도합니다. 길지도 않은 세상 짐승처럼 으르릉거리며 살지 말고 서로 진실과 사랑 속에 살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