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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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10 21:37
시몬 아빠스님 강의, 하느님과 인격적 만남 (4)하느님의 사랑
 글쓴이 : 김영진
조회 : 179   추천 : 0  

(계약과 배신)

우리 그리스도교는 계약의 종교입니다. 신약, 구약은 원래 old testament, new testament, 즉 계약입니다. 매일 미사에서 너희는 이것을 받아마셔라, 이것은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새로운 계약, 영원히 계속될 계약, 구원이 될 계약입니다. 그 전의 계약은 구약입니다. 아브라함과 계약, 이삭과 계약, 야곱과 계약, 시나이 산 계약 등 있습니다. 계약은 대등한 사람들 간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우리가 계약을 맺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약상대가 됩니까? 그럼에도 하느님은 우리와 계약을 맺자는 것입니다. 계약조건이 너희들이 내 사랑 안에 떠나지 않고 머물러준다면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줄게.’ 우리가 횡재하는 계약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역사는 계속 깨뜨립니다. 배반의 역사입니다. 하느님은 판관을 보내고, 예언자를 보내고, 달래고, 겁주고 해도 듣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다음 세 가지로 표현됩니다. 첫째 부자(父子) 간의 사랑, 둘째 모자(母子) 간의 사랑, 셋째 부부(夫婦) 간의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이중 하느님 아버지라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주님의 기도도 그렇지만, 극적인 비유는 탕자의 비유, 즉 선한 아버지 비유입니다. 나쁜 짓하고 재산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아들을 위하여 잔치하시는 아버지에게 불평하는 큰 아들에게, “너는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이 기쁜 날 잔치를 벌여야 하지 않겠느냐?(루가 15, 11-32)” 비슷한 세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잃은 양(루가 15, 1-7), 잃은 은전(루가 15, 8-10), 잃었던 아들에서 이 비유의 주인공은 선한 아버지입니다. 과거는 잊어버리시는 선한 아버지, 그런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모자지간, 인간사회에서 가장 큰 사랑은 모성(母性)이라고 합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어머니 사랑입니다. 이사야 4915절에서 이 세상에 어미가 제 아이를 잊어버리는 일이 있겠느냐? 그런 일 없겠지만, 혹시 일어나도 나는 절대 너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사야 434절에서 너는 나의 귀염둥이,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염둥이, 너를 위해서라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주고서라고 되찾아오겠다.” 눈물겨운 대목입니다.

세 번째 부부간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남녀의 사랑으로 표현합니다. 아가서가 무엇입니까? 하느님과 인간의 연애시입니다. 호세아서를 보세요. 낭군은 하느님, 아내는 인간입니다. 남편은 왕입니다. 아내는 시골뜨기, 아무것도 볼품없는 시골처녀입니다. 화장해주고, 보석 달아주고, 비단옷 입히고, 왕비로, 아내로 맞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궁궐을 나가 외간남자와 놀아납니다. 얼마나 화날까요? 그런데 남편은 화를 참고, 부정한 아내를 데려다가 다시 목욕시키고, 상처를 싸매주고, 그러면서 이렇게 애원합니다. “너는 내 아내이고, 나는 너의 남편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그런데 나를 저버리고 외간남자와 놀아나느냐?”

성서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렇게 사랑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예는 더 많습니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성서란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연애편지이라고 합니다. 구구절절 사랑의 편지입니다. 저는 연애편지를 받은 적 없지만 여러분은 연애편지를 받았을 것입니다. 연애편지 받으면, 읽고 또 읽고 거의 외우다시피 합니다. 글 뒤에 있는 것까지 읽어내려고 합니다. 성서는 바로 하느님의 연애편지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아버지 같은 마음, 어머니 같은 마음, 또는 사랑하는 남편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감싸주십니다.

 

(하느님 말씀을 들음)

3-4세기의 초기 사막의 은수자 들은 초심자들이 찾아와서 저에게 한마디 해 주십시오하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참 후 너는 성서를 들어보지 못했느냐?” 합니다. 읽어보지 않았느냐? 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성서는 글로 쓰여 진 것, 즉 죽은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지금 나에게 직접 말씀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글을 되뇌면서, 나중에 또 되뇌다 보면 마치 되새김하듯 단맛이 나옵니다. 어릴 때 사탕을 한 번에 먹으면 아까우니까. 조금씩 빨아먹으면서 단맛을 즐깁니다. 바로 그와 같습니다.

 

(결론)

신앙 생활할 때, 때로는 화나고 마음 안 들고 짜증나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제파악을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 주체는 흙먼지입니다. 흙먼지가 자존심 있습니까? 없지요. 그런데 내 자존심을 긁어놓았다’, ‘나를 우습게 본다합니다. 자존심이 없는데, 자존심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루에 적어도 세 번 정도, 못된 생각 떠오를 때 마다 머리를 콕콕 치면서 흙먼지 까불지 마하고 반성하면 반() 성인됩니다. 주제파악이 잘 안되어 생기는 일입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그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 올바른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격적 만남입니다. 뜨와 와 므와(Toi & Moi), ‘당신과 나의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참고) 동영상 보는 법

(1) 사이트 이동 : 인터넷 주소가 링크되어 있습니다. 인터넷 주소 위에 커서를 올려놓고 화살표에서 손모양로 바뀔 때 마우스 클릭하면 해당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주소를 복사하여 인터넷 검색창에 붙이고 검색하면 됩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평화방송 홈페이지에서 ‘VOD’ 클릭하고, 제목 넣고 찾기하면 됩니다. 강의는 20027월 하셨고, 동영상은 홈페이지 개편으로 20046월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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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터넷 주소 http://www.cpbc.co.kr/onmedia/programe.php?code=&cid=7653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