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기능들이 상호 보완한다는 것도 또 사람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불일치와 갈등을 극복해 나갈 줄 안다는 것도 나는 확실히 수긍한다. 앞으로는 우리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점들을 조심스레 고려하는 데 더욱 익숙하게 되어, 사람들의 차이를 잘 구별하여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서로 의존하며 보완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바울로 성인이 사람의 몸이 각각 다른 지체들로 이루는 일치를, 매우 다양한 기능들이 서로 보완하여 이루는 교회의 몸의 일치에 비긴 것이 옳았다는 것은, 아마 과거보다도 지금 훨씬 더 절감하리라.

   그러나 고린토 전서 12장 12-31절을 잘 저어보면 바울로가 다루고 있는 것은 매우 다른 온갖 기능들이 교회 안에서 조화롭게 작용하고 있다는, 그런 단순한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바울로는, 보통 인간 세계가 가진 질서와는 온전히 다른, 그러면서 그리스도교에는 기본이 되는, 굉장히 특별한 종류의 조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바는 하느님 안에 사는 것이며, 우리가 발견해야 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과 더 이상 맞겨루지 말고 조화로이 살게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수도승생활과 세상 구원'이라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였다. 모세가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있었을 때 그는 하나의 살아 있는 표지,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께로 향해야만 한다는 분명한 표지였다. 그렇다면 수도승이란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란 말인가?

   우리는 수도원에서 사는 생활이란 ‘관상적 삶’이라고 쉽사리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용어의 비그리스도교적 유래에 관한 의구심을 젖혀놓고, 이 용어를 그대로 계속 사용하기로 하자. 우리가 즉시 주목해야 하는 바는 바울로가 고린토 전서 12장 28-30절에 열거한 교회 내의 각각 다른 기능 가운데에는 어떤 종류의관상적 삶에 대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들은 가르칠 책임을 맡은 이들로 기적을 행하는 자로, 혹은 병을 고치는 자로 불리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돕거나 지도하거나 방언을 하는 특은을 받았다. 그러나 마리아가 선택하고 예수께서 ‘가장 좋은 몫'이라고 하셨던 부분, 흑은 그분께서 기도하기 위해 홀로 머물며 바치셨던 그 시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관상적 삶이 많은 봉사직 가운데 하나로, 하나의 의무직으로 간주될 수 있겠는가?바울로가 이 주제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를 같은 고린토 전서 12장의 13절과 31절이 설명해 주고 있는 듯하다. 13절은 ‘··· 우리는 모두 한․영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으며 ‥‥ 한 영을 받아 마셨습니다’ 라 하고31절은 '좀 더 근 은사를 간절히 구하시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그 가장 훌륭한 길을 여러분에게 보 여 주겠습니다'라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 교회 일원들은 그들의 봉사직으로 말미암아 서로 구분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모두 함께 받아 마신, 그들을 그 어떤 길보다도 '더 훌륭한' 한 '길'로 이끌어 가는 영, 그 하나인 성령의 존재로 말미암아 온전히 일치되어서 끝내는 그들 가운데 더 이상 어떠한 구분도 가질 수 없게 되고 만다. 바울로에게 너무도 자명한 사실은, 그리스도 몸의 지체들이 다른 사람들이 가진 다른 기능 혹은 그 기능을 필요로 하는 봉사직을 탐내는 것보다 이 각양각색의 선물들을 통해 하느님의 영이 가져오는 일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치, 그것 때문에 교회의 여러 봉사직이 분배된 이 일치는 너무나도 뚜렷한 이름을 지녔으니 이른 바 '사랑의 일치'이다. 사랑이 없으면 가장 고귀한 봉사도 열기(熱気)에 지나지 않는다. 더 나쁜 것은, 봉사직의 성격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잘못되는 경우인데, 이때는 봉사직들이 교회를 건설하기는커녕 오히려 파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