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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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10-08 19:30
혼인성사와 성품성사
 글쓴이 : 인 끌레멘스 신부
조회 : 12,372   추천 : 0  
들어가는 말

종이신 그리스도의 에피클레시스들: 생명의 선물
혼인과 성품 직무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된 생명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성사적 공동에너지가 활동한다. 이 두 에너지는 한 사람에게 가득 차서 그 사람을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활동에 더 개방시키기 위한 것이다. 곧 그 사람의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 자체를 수여하는 것이다. 혼인과 성품의 공동에너지 양쪽은 동시에 은사(카리스마)들로서, 곧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한 선물이며, 그리고 이 은사를 수여받은 사람들을 신화(神化 Deificatio)시키는 에너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하셨듯이 오직 자신의 생명을 줄 때만 하느님의 생명을 줄 수 있지만, 이 은혜를 받은 개인들이 선사하고 있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그들 자신이 변화하는 그 만큼, 자기 자신을 수여하는 이 선물은 한층 더 풍부히 열매를 맺는다. 이 선물들은 한정된 목적에 연결된 전달해주는 은사들이 아니라, 기능적이고 구조적인 공동에너지이다. 더 적합한 표현으로는, “온 몸이 연결되고 결합되게” 하는 유기적 은사들이다 (에페 4,11-16).

가. 혼인성사

1) 의미
“혼인 서약은 이로써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바, 주 그리스도께 의하여 영세자들 사이에는 성사의 품위로 올려졌다” (교회법 1055조 1항).
성사적 혼인 (성사혼)의 새로운 점은 약혼자들이 성령의 선물을 받는 에피클레시스에서 드러난다. 이 사실을 강하게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 혼인이 단지 계약이며 부부가 계약의 당사자이고 주체라는 인간적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부부의 합의는 인간적 응답의 에너지로 필요하지만, 이 합의들은 하느님 선물의 에너지를 우리가 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른 방식이 아닌, 남편과 아내가 결합하도록 변모시키는 신비에 관해 정확히 말하고 있는, 혼인 주제에 관한 성 바울로의 유명한 말씀은 주목할 만하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넘겨주셨던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시오” (에페 5,25-26). 또 바울로는 덧붙이기를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이 신비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에페 5,32).

이 성사가 포함하는 것은 부부의 축복이 아니라 (모든 혼인은 거룩하다), 남편과 아내가 참여하게 될 그리스도와 그분 교회의 사랑이다. 신비가 먼저 오고, 이 신비는 부부 결합의 신적 의미를 계시하고 이 의미를 부부 안에서 실현한다.

대부분의 문화에서 혼인의 지위는 “계약”의 사상으로 상징화된다. 성사적 혼인에서 신랑과 신부를 결합하는 개인적 계약이 아니라, 여기서는 “신랑과 신부”가 떨어질 수 없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그리고 이 남자와 이 여자를 드러낸다. 그렇지만 계약은 성령 자체이시다. 성령은, 분리될 수 없는 이 사랑의 일치가 나오는 원천이시다. 성령께서는 사람의 죄가 파괴할 수 없는 사랑의 신적 관계이시다. 성령께서 가정 교회인 가정에 새로운 관계를 세우는 친교이시다. 이 “하느님의 집”에서 친교로서의 교회의 신비가 구체적으로 보인다. 특별한 성사적 혼인에서 이 새로운 점이 무엇보다도 부부를 변화시킨다. 부부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대립과, 이편 또는 저편의 우위적 모든 사고를 넘어서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결합시키는 투명성에 함께 할 때 남편과 아내라는 부부 관계는 확고하게 새로워질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요소는, 그들의 자녀들에 나누어주는, 부부가 같이 갖고 있는 생명의 선물을 변화시키고, 게다가 이 생명의 선물이 미리 알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게 한다. 이 풍성함은 그들의 창조력과 그들의 봉사의 모든 양식으로 확장된다. 교회 안에서 수도생활의 은사가 혼인의 은사를 보완한다 (1고린 7장을 보라). 그러나 수도생활의 은사는 성사가 아니다. 수도생활의 기초인 동정의 선물은 부활의 세계에 “이미” 참여하게 한다 (루가 21,35-36). 혼인성사는 사랑의 성사이다. 가정 교회를 건설하는 성사이다. 혼인은 신랑과 신부 두 사람만의 사건이 아니다. 공동체 사건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혼인을 한다.

2) 혼인 예식
(1) 질문
- 자유 의지
- 전 생애에 걸친 사랑과 존경의 의지
- 자녀 출산과 신앙 교육

(2) 합의(consensus)의 교환
이 부분이 혼인 성사의 핵심이다. 합의가 없으면 혼인이 성립되지 않는다. 합의의 표현으로 오른손을 서로 잡고서 아래의 말을 한다.
신랑: 나 ( )는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신부: 나 ( )는 당신을 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3) 합의 수용
사제는 교회의 이름으로 이 동의를 받아들인다. 사제는 교회를 대표해서 선언한다. “주님께서는 두 분이 교회 앞에서 고백한 이 합의를 당신 은혜로 확고하게 하시고 두 분에게 복을 가득 내리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합니다.”

(4) 반지 축복과 교환
반지는 사랑과 신의의 표지이며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서로 교환한다.

(5) (주님의 기도 끝) 혼인 강복
동작: 부부를 향하여 팔을 펴들고 - 성령의 부음
창조 사업에 협력: 창조질서 안에서 제정, 따라서 단순히 인간적인 제도가 아니다 (남녀 창조 - 하느님 모상).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마태 19,6).
교회의 성사로 승격: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결합에 대한 표지
성령의 은사: 주님의 사랑을 마음에 부어주시어 부부의 신의를 끝까지 지키게 한다.
신부의 역할: “주님의 딸” 성서의 여자들이 전형 - 사랑, 평화의 건설자
남편의 역할: 대등한 반려자,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그리스도인의 증거: 신앙의 충실, 주님 계명의 준수, 성실한 혼인 삶으로 타인에게 모범
자손과 영원한 생명: 현세에서 자손들, 내세에서 영생 - 아브라함을 암시

나. 성품 성사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 성품 직무는 봉사의 신비 중심에 있다. 안수는 성령의 힘을 전달하는 성서적 상징이다. 이 안수에서 드러나는 성품 직무의 에피클레시스(epiclesis)는, 몇 지체 위에 더 깊이 숨어있고 가장 가난한 교회적 에너지를 부어 그 지체들을 다른 성사적 에피클레시스의 봉사자들로 만드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근원적이다. 사제 서품에서 안수에 앞서 주교는 선발자를 위하여 기도한다. “주 하느님, 간구하오니, 저희 기도를 들어주시어 이 부제에게 성령을 내려주시고 사제 성직의 은총과 능력을 부어주소서” (예식서 156), 그리고 사제 축성기도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이 사제직을 수행하도록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 안에서 성자 그리스도의 봉사들에게 여러 직위를 나누어맡기시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간구하오니 이 부제에게 사제의 직위를 주소서. 이 부제의 마음속에 성령을 새롭게 하시어, 주님께서 맡기시는 사제 직무를 받아 보존하며, 덕행 생활로 모범이 되게 하소서” (예식서 159) 하고 성령의 힘을 청한다. 그리고 안수 다음에 곧바로 이어지는 사제 수품 기도에서 주교는 성품성사가 교회의 다른 성사들을 위한 성사임을 강조한다. “이 부제를 주교와 함께 천상 신비의 충실한 관리자가 되게 하시어, 주님의 백성이 세례로 다시 태어나고, 주님 제단에서 양식을 받아먹으며, 죄인은 화해하고 병자는 고통을 덜게 하소서” (예식서 159). 이미 주교는 서품 예식의 강론에서 이 점을 언급했다. “성세성사로 사람들을 모아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참회 성사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여주며, 병자성사로 병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십시오. 또한 여러 가지 예식을 거행하고, 하느님의 백성 뿐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하여 매일 여러 차례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리며...” (예식서 151).

이 “성품”은 주님의 충실성에 대한 가장 놀라운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당신이 파견한 대리자의 실패에도 주님은 당신 성령의 선물을 당신 교회에서 빼앗지 않으실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베드로가 세례주든지 또는 유다가 세례주든지, 세례를 베푸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성품 교역자들인 “질그릇들”을 통해 당신 힘으로 항상 성사들 안에 작용하실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장 탁월하고 근원적인 성품성사로 주교서품을 보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제직과 부제직은 탁월하게 주교의 사목직에 보조적인 품계에 참여를 위한 성사들인 것이다 (LG 87). 이 봉사의 품계이든 주교와, 주교의 단일한 은사를 다수에 확장하는 사제단은 “사제직”에 서품된다. 부제에게 하는 안수는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 직무를 위하여”이다 (교회 헌장 29항). 이 품계에 결합된 형태이든, 그것들의 새로운 요소는 지도하거나 관리하는 사회적 기능으로 격하될 수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비우신 케노시스의 신비 속에 뿌리박고 있다. 이 차원에서 사랑과 관계되지 않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사랑이 주교, 신부, 또는 부제의 마음에만 확산된 것만 아니라, 또한 특히 이 사랑은 그들의 봉사를 수행하는 바로 에너지 자체인 것이다. 주교와 신부와 부제의 봉사 안에서 성령께서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주님의 옆구리에서 충만히 흘러나오신다. 왜냐하면 이 약한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당신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때까지 교회의 종이시기 때문이다. 이 케노시스의 신비는 여기에서 당신 양들에게 당신 생명을 내어주시는 목자의 신비이다. 그래서 서품 미사 강론에서 주교는 “그대 자신이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사람을 위하여 사람 중에 선발되고 임명되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봉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러 오셨고, 길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착한 목자를 언제나 모범으로 삼기 바랍니다” (예식서 151) 하고 권고한다.


나가는 말

혼인성사로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한 몸에 묶는 사랑에 참여한다. 이 몸 안에서 직무 사제직의 봉사자들은 당신의 신부와 구별되시는 그리스도, 당신 교회의 봉사자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낸다. 그리스도께서는 온 사랑의 에너지로 교회를 부르시고, 교회에게 당신의 말씀을 건네시고, 아버지를 교회에 계시하시고, 교회를 비추시고, 교회를 용서하시고, 당신 몸과 피로 교회를 양육하시고, 교회를 강하게 하시고, 교회를 파견하시고, 교회를 정화하시고, 교회를 변모시키시고, 교회가 자식을 낳아 풍성하게 하시고, 세상이 하느님 나라에서 태어나게 교회로 하여금 세상을 이끌도록 하신다. 여기에서 성령께서는 전례이시고, 성령의 교역자들은 전례의 봉사자들이다. 이 교역자들은 교회의 다른 구성원의 삼중 직무, 곧 예언직, 사제직, 왕직 기능을 반복하거나 복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이 교역자들은 다른 지체들과 함께 그리고 다른 지체들을 위해 존재하고, 다른 지체들의 봉사자들이다. 교회에 봉사하는 이 직능을 위해서 그들의 전체 직무가 “서품된” 것이다. 이 봉사 직능은 구조적인 것이지 임시적인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