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자료실 > 수도승영성  

 
작성일 : 07-09-27 20:51
정주(Stabilitas)
 글쓴이 : 허 로무알도
조회 : 7,543   추천 : 0  
"정주"(Stabilitas)


머리말

'정주'(定住, stabilitas)는 베네딕도회의 3대 서원 중 하나이다. 베네딕도회원은 다른 회의 수도자들과는 달리 '순명'과 '수도승답게 생활할 것'과 더불어 '정주'를 서원한다. '정주'는 베네딕도회 삶을 특징짓는 중요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이미 RB이전의 다른 규칙서들과 RM에서도 발견되므로 베네딕도 시대에 새로이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단지 베네딕도에 의해서 보다 강조되었기에 수도승 생활의 발전에 있어 그의 독특한 공헌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베네딕도는 왜 정주를 이전의 전통에서 보다도 더 강조하여 서원으로까지 확대시켰는가?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베네딕도는 기로바꾸스와 사라바이따들의 삶에서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인 이유 말고도 정주를 통해 마음의 순결과 관상기도를 위한 더 좋은 선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베네딕도가 생각한 정주의 개념과 이상은 무엇인가?


1. 정주의 유형

1) 외적 정주
어떤 특정한 장소에 육체적 '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적정주의 핵심은 마음의 편안함에 있다.

2) 내적 정주
마음을 순결히 보존하고, 죄와 악습으로부터 항상 주의하며, 자신의 모든 처지와 상황에 만족하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달리 마음의 정주, 하느님 사랑 안에서의 정주라고도 한다.

외적 정주는 내적 정주를 지향하며 그것을 위한 하나의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내적 정주 없는 외적 정주는 참된 의미의 정주라 할 수 없다. 참된 의미의 정주는 내적 정주와 외적 정주를 모두 포함한다.


2. 정주의 장소

1) 외적 장소
(1) 수도회(Congregation)
(2) 수도원의 봉쇄구역(Claustra Monasterii)
(3) 독방 - 고독과 침묵 중에 하느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개인 기도소

2) 내적 장소
정주의 내적인 장소는 '마음'이다. 마음은 우리 자신을 통합하는 중심 또는 핵이다. 마음 안에 머물지 못할 때 정주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 하느님 현존 안에서 마음으로부터 평화를 느끼지 못하는 곳은 결코 우리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우리를 얽어메는 감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정주의 목표

정주의 목표는 RB 머리말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주님 나라 장막에 머무는 것'(머리말 22.23.39 참조), '주님을 뵈옵는 것'(머리말 21참조), '주님 나라의 동거인이 되는 것'(머리말 50 참조)이다. 이것들은 모두 같은 목표의 다른 표현들이며, 가시아노가 말한 수도승 생활의 긍극 목표인 '하느님 나라'에 상응한다. 따라서 수도승이 정주를 실천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 안에서 그분 나라에 머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순결히 보존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순결'은 바로 정주의 직접적 목표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의 순결에 이를 수 있는가?

베네딕도는 이를 위해서는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선행으로 달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규칙과 아빠스에게 순명하며 꾸준히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이 목표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며, 이것이 곧 'conversatio morum'의 일부이자, 정주의 구체적 내용이다. 그러나 이 모든 선행들은 '자아포기'를 통해서만 비로소 그 실천이 가능하다.

결국 정주란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 상태인 하느님 나라 장막에 머물고자 하는 궁극 목표에 이르기 위해 특정한 수도 공동체에 몸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항구히 머물면서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부단한 선행 실천을 통해 얻어지는 마음의 순결로 자신을 준비해 가는 것이다.


4. 정주의 내용

정주는 c.m을 위한 하나의 조건이며, c.m은 바로 정주의 내용이라 하겠다. c.m은 세속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지속적으로 수도승다운 생활을 해나가겠다는 의지이다. 이를 위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규칙과 아빠스에 대한 순명이다. 수도승은 정주로써 이 세상을 떠나 수도원 안에 머물며 규칙과 아빠스에게 순명하면서 c.m으로 정주의 이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c.m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즉 정주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수도원에 머물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기도'와 '노동', 그리고 '성독'으로 이루어지는 매일의 삶 속에서 규칙과 아빠스에게 순명하며 부단히 선행을 실천하고 겸손의 덕을 닦아 나가는 것이다. 바로 '겸손'과 '선행 실천'이 수도승들의 거룩한 소명인 것이다.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바대로 정주란 우리가 보다 효과적으로 하느님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조건이며, 이는 c.m을 동반할 때에 비로소 참다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수도승이 한 수도 공동체 안에 정주하며 항구히 하느님을 찾아 나가는 삶 그 자체 안에 이미 교회 안에서 그의 소명이 드러나 있다. 베네딕도회원으로서 우리의 소명은 외적인 사도직 활동에 있지 않고, 정주를 통하여 하느님을 찾는 수행의 삶에 있다. 정주는 바로 이러한 베네딕도회의 소명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의 생활양식이며 베네딕도회의 독특한 특성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