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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26 21:32

베네딕도회의 서원

글쓴이 : 허 로무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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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회의 서원

베네딕도회 수도승은 수련기 말에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 '정주'(stabilitas)와 '수도승답게 생활할 것'(conversatio morum)과 '순명'(oboedientia)을 서원한다. 그는 이 세 가지 서약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일에 자신의 전 삶을 투신한다. 이 세 가지 서약들에 대해서 하나 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1. 정주(stabilitas)

정주는 베네딕도회 삶을 특징짓는 중요하고도 전형적인 베네딕도회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이미 RB이전의 다른 규칙서들과 RM에서도 발견되므로 베네딕도 시대에 새로이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단지 베네딕도에 의해서 보다 강조되었기에 수도승 생활의 발전에 있어 그의 독특한 공헌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베네딕도는 왜 정주를 이전의 전통에서보다도 더 강조하여 서원으로까지 확대시켰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베네딕도는 당시 이 수도원 저 수도원을 떠돌아다니며 많은 폐해를 끼치고 있던 '기로바꾸스들'(giirovaghi)의 삶에서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인 이유말고도 정주를 통해 마음의 순결과 관상기도를 위한 더 좋은 선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베네딕도가 생각한 정주의 개념과 이상은 무엇인가?

정주란 일차적으로 이곳저곳을 여행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며 또한 죽을 때까지 자신을 한 수도원에 묶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 상태인 하느님 나라 장막에 머물고자 하는 궁극 목표에 이르기 위해 특정한 수도 공동체에 몸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항구히 머물면서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부단한 선행 실천을 통해 얻어지는 마음의 순결로 자신을 준비해 가는 것이다.

2. 순명'(oboedientia)

순명은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장상이나 다른 사람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기 뜻을 포기함을 의미한다. 베네딕도는 자신의 규칙서 제5장, 제68장, 그리고 제71장에서 순명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RB 안에 나타난 순명은 크게 두 가지 차원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수직적인 차원으로서 이는 장상에 대한 순명이다. RB 5장은 주로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둘째는 순명의 수평적인 차원이다. 이는 형제들 상호간의 순명으로 RB 71장에서 다루어진다.

RB 5장에 따르면 장상에 대한 순명의 근거는 하느님께 대한 순명에 있다(5,15). 이는 장상을 그리스도의 대리자(RB 2,2)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를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고 믿는다. 5장 2절에서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소중히 여기지 말라"는 말과 더불어 순명은 이제 순명은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성부께 대한 그분의 순종의 모범을 본받게 한다. 따라서 장상에 대한 순명을 단순히 한 인간에 대한 순명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그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간주하여 그리스도께 순명한다고 생각할 때 참된 순명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순명의 동기는 그리스도이다. RB 72장에서 역시 "아무것도 그리스도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고 하고 있다. 순명은 '그리스도께', 그리고 성부께 순명하신 '그리스도처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베네딕도가 가르치는 순명의 토대이다.

RB 71,1은 하느님께서 장상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어떤 형제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따라서 형제들은 서로 순명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가게 된다(71,1). 장상에 대한 순명(수직적인 차원)과 마찬가지로 형제들 상호간의 순명(수평적인 차원) 없이 공동생활은 불가능하다. '순명'의 한 복판에는 '공동체'가 있다. 오로지 순명하는 사람들만이 공동체에서 생활할 수 있다. 이처럼 순명은 공동체 생활과 연결된다(수평적 차원). 이 수평적 차원은 RM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반면, RB에서는 부각되고 있는 RB의 특징적인 면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장상과 형제들을 통해서만 당신 뜻을 전달하시는 것은 아니다. 우리 양심 또한 하느님 계시의 값진 원천이다. 베네딕도는 RB 68장에서 어떤 형제가 불가능한 일을 명령받았을 때, 겸손되이 말씀드릴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하면서 양심의 권리를 보호하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장상의 판단에 달려 있다. 불가능한 일을 명령받았을 때 하는 순명은 보다 완전하고 차원 높은 순명이다.

3. '수도승답게 생활할 것'(conversatio morum)

베네딕도회 수도승이 하는 세 가지 서약 가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수도승답게 생활하겠다는 서약일 것이다. 그러나 'conversatio'란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기는 그렇게 쉽지는 않다. 베네딕도는 스승의 규칙서(Regula Magistri)에서 사용된 'conversio'란 말을 'conversatio'로 바꾸었는데, 실제 쇠퇴의 시기였던 베네딕도의 시대에 이 두 용어의 차이점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용어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으나, 오늘날 일반적으로 conversio는 일회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수도원에 입회하는 것을 뜻했고, conversatio는 지속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수도승생활을 의미했다. 따라서 'conversatio morum'은 수도승생활 양식을 말하며, 이것을 서약한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세속적인 생활 양식을 버리고 수도승생활 양식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수도승 생활적인 것들로 자신의 전 삶과 모든 태도를 변화시키는 지속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수도승은 수도승다운 생활로 세속적인 야심, 안락, 쾌락, 재물, 육적인 욕망들을 겸손, 정결, 가난, 포기 등으로 대체하고 끊임없는 기도와 형제적인 봉사로 하느님을 찾는 일에 진력한다.

4. 종합

성 베네딕도 시대 이래 '정주, 수도승답게 생활할 것, 그리고 순명'이란 말들은 수도승이 서원 날에 받아들인 의무들을 나타내기 위한 매우 적합한 용어들로서 채택되어 왔다. 그것들은 9세기부터 10세기까지의 서원양식 안에서 나타난다. 게다가 가난, 독신, 그리고 순명 서원을 수도생활에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수도승 생활 밖의 관습은 '가난' 또는 '정결'이란 말이 언급조차 되지 않는 우리 서원 양식의 특별한 내용에 대해 하나의 설명을 필요로 하게 한다. 사실 가난과 독신은 초기 수도승생활 전통 안에서, 그리고 베네딕도 당시 수도승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일반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베네딕도는 구태여 이 두 가지 요소들을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가난과 독신은 실제 수도승답게 생활하겠다는 서약 안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비록 규칙서 안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것들 역시 수도 규율에 있어 본질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다.

8세기 후반에 끌뤼니 수도원에서 사용된 전통적인 서원양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나…수사는, …아빠스 앞에서,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를 기려 세워진 이 수도원 안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모든 성인들 앞에서 성 베네딕도의 규칙에 따라 수도자로서 정주할 것과 내 품행을 바꿀 것(수도승답게 살아갈 것)과 순명할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 양식이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곳에서 정주할 것을 약속합니다. 만일 순명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가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나는 이 수도원에서 살고 죽을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내 생활을 바꾸고 세속적인 삶을 포기하고 수도승으로 살 것을 약속합니다. 나는 이 공동체의 장상들에게 순명할 것을 약속합니다.'

성인들이 증인으로 불러내어진다. 이것은 일반적인 용어들로 행해질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여기서 유해를 모시고 있는 성인들, 특별히 동정 마리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으로 행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서원의 공적인 측면을 보게 된다. 즉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이제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자기 증여의 구체적인 측면도 나타난다. 즉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셨고 나는 이러한 형태의 삶, 이 형제들, 이 장상들, 이 분위기 등과 더블어 이 수도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세 가지 서약들은 각각 독립된 별개의 것들이 아니다. 세 가지 구분된 서약들(voti)이 아니라, '하나의 약속'(una promessa)의 세 측면들이라 할 수 있다. 수련자는 바로 전 수도승생활 양식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약들은 일련의 특별한 의무들을 의미한다기 보다도 전 삶의 전적인 봉헌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도승 서원의 중심 핵 혹은 중심 축은 수도승이 그것에 의해 자신의 하느님 찾음을 표현하는 기본적인 방법들을 받아들이는 '수도승다운 생활을 해 나갈 것'이라는 서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