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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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26 20:43
'활동'과 '관상'의 분리
 글쓴이 : 허 로무알도
조회 : 7,419   추천 : 0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의미로서의 '활동'과 '관상'은 13세기 도미니꼬회 수도자였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구분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수도생활을 '활동생활'과 '관상생활'로 구분하는 경향이 생겨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구분을 따르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구분은 스콜라 신학적인 구분으로서 수도생활에 대한 전대미문의 새로운 이해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세기 이전, 다시 말해 탁발 수도회들이 생겨나기 이전까지는 수도생활은 오로지 수도승생활을 의미했었습니다. 수도생활은 본래 '관상생활'과 '활동생활'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일치되어 있었습니다. 활동 따로 관상 따로가 아니라, 이 둘은 수도생활의 두 축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들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활동'이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사도직 활동'이 아닌, '수행', '금욕', '수덕' 등을 뜻합니다. 따라서 '활동생활'이란 '수행생활' 혹은 '금욕생활' 등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활동생활'은 '영적 수행들'(askesis: 자신의 악한 생각들과 악습들을 거스른 내적 투쟁)을 통한 '아파테이아'(apatheia: 모든 욕정들로부터 해방된 내적 평정의 상태) 혹은 '마음의 순결'(puritas cordis)에 이르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상생활'이란 'Lectio divina'(성서독서), '기도' 등을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리스도교 초기 수도교부들(에바그리우스, 요한 까시아노, 등등)은 이러한 '관상생활'은 자기와의 내적 투쟁인 '활동생활'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활동생활'은 '관상생활'을 도와주며,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가는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서 수도생활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수도생활에 대한 이러한 유일한 이해와 개념은 13세기에 탁발수도회들이 생겨나면서부터 가려지게 되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최초로 '활동'과 '관상'을 구분하면서 이제 수도생활도 '활동 수도생활'과 '관상 수도생활'로 양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활동'이란 더 이상 수도생활 전통 안에서 이해된 '영적인 수행들', '수덕', '수행', '금욕'으로서의 '활동'이 아니라 '사도직 활동'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해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수도생활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과 이해가 13세기 이후 점차 가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이란 그보다 훨씬 오랜 뿌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모를 때 우리는 흔히 수도생활을 단순히 '활동(사도직) 생활'과 '관상 생활'로 양분하여 이해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도원의 봉쇄구역 안에서 생활하건 여러 가지 사도직 활동에 종사하며 생활하든지 수도생활의 공통된 개념은 동일합니다. 즉 '자기와의 부단한 내적 투쟁'을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는 것. 이것이 바로 수도생활이며, 모든 수도자 본연의 임무인 것입니다.

그럼 깔멜회를 왜 수도승생활을 하는 수도회라 하지 않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위에서 말씀드린 바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13세기 탁발 수도회들의 출현 이전 수도생활이란 오로지 수도승생활(vita monastica, the monastic life, monasticism)을 뜻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13세기를 기점으로 해서 수도생활의 새로운 형태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수도승생활을 하는 수도회들은 바로 전통적인 형태의 수도생활의 맥을 잇는 수도회들을 뜻합니다. 즉 '관상'과 '활동'이 양분되기 이전의 하나로 통합된 고대 수도생활 전통을 따르는 수도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깔멜회를 탁발 수도회라 하는 것은 이 수도회가 사도직 활동을 하는 '활동 수도회'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봉쇄 안에서 기도를 중심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생계유지를 위해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뜻에서입니다. 탁발이라는 것은 남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즉 기도생활에 더욱 투신하기 위해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탁발 수도회라 하는 것입니다. 반면 고대 수도생활 전통을 따르는 수도회들, 특별히 베네딕도회의 경우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점이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교회 안에서 축성생활을 하는 단체들 안에 수도회가 포함되어 있는데, 수도회는 다시 그 삶의 형태에 따라 '수도승적 수도회들'과 '관상수도회들', 그리고 '사도직 활동 수도회'들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깔멜회는 '관상수도회'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구분 자체도 13세기 스콜라 신학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