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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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30 20:52
성 마크리나의 생애(본문9)
 글쓴이 : 허 로무알도
조회 : 10,388   추천 : 0  
성 마크리나의 생애(본문9)
 
 
매장
35. 기도가 끝나자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금하는 신적 계명을 어기게 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육신은 분명 썩어서 녹아내렸을 것이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고 혐오스럽게 변했을 터인데, 만일 부모님의 시신에서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그러한 수치가 드러나게 된다면 어떻게 내가 (성경에 적힌) 그러한 저주를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니 노아가 자기 아들에 대해 가졌던 분노가 제게 미치는 것을 보는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바로 지금 제가 해야 하는 일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덤의 덮개가 열리고 우리 눈앞에 드러난 부모님의 시신은 이미 관의 한 끝에서 다른 한 끝까지 펼쳐진 깨끗한 아마포로 덮여진 상태였습니다. 부모님의 시신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아마포에 쌓여 있었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지역의 주교와 저는 들것에서 마크리나의 거룩한 시신을 내려 어머니의 시신 곁에 놓은 다음 그들을 위해 공동기도를 바쳤습니다. 사실 두 사람 모두는 평생을 한 마음으로 죽은 후에라도 자신들의 육신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또 죽음이 생전의 친교를 깨뜨리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의 귀환: 어떤 군인과의 만남
36. 예법에 따른 모든 장례 절차를 다 마치자 저는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저는 무덤 위에 엎드려 땅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서 그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생각에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이 무너진 채로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길을 가던 중에 고위층 군인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세바스토폴리스라고 불리는 폰투스의 작은 도시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의 지휘관이었고 거기서 자신의 병사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을 지날 때 그는 정중하게 저를 맞았습니다. 그는 저의 불행을 듣고 몹시 슬퍼했습니다. 그는 우리 집안과 친교와 교분을 통해 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제게 마크리나가 행한 기적에 관해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여기에 덧붙여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울음을 그치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자 들어 보십시오. 얼마나 위대한 선이 인간의 삶에서 사라져 버렸는지요.”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마크리나를 방문했던 이야기
37. “어느 날 저와 저의 아내에게는 덕행의 학교(phrontistèrion)를 방문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습니다. 저는 하느님께 축복 받은 사람이 한 평생을 보내는 곳을 그렇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전염병에 걸려 눈이 아픈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병 때문에 눈동자 주위의 각막이 두꺼워지고 하얗게 변해서 그의 모습은 끔찍하고 비참하였습니다. 우리가 그 거룩한 처소로 들어갔을 때, 저와 저의 아내는 서로 떨어져 저는 그 곳에서 철학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남자들을, 제 아내는 그런 여인들을 방문하였습니다. 당신의 형제인 페투르스가 남자들의 거처로 저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내는 동정녀들의 거처에서 성인을 만났던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 우리는 이제 그 은수처를 떠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떠날 채비를 하였을 때 사람들이 양편에서 우리를 다정히 만류하였습니다. 당신 형제가 저를 철학적 식탁(수도승들의 모임)에 자리 하도록 초대했고, 하느님께 축복 받은 사람도 제 아내를 떠나보내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 딸을 자기 무릎에 앉히고 그들에게 (철학적) 식탁을 마련하여 철학의 풍요로움을 제공하기 전에는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이를 어루만지면서 자연스럽게 그 눈에다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는 병든 눈을 보고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께서 저의 청 하나를 들어주시고 저희와 함께 식사를 하신다면 그런 당신의 호의에 대한 성의 표시로 제가 보답을 하겠습니다.” 소녀의 어머니는 그 보답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제게는 약이 있습니다.” 위대한 마크리나가 말했습니다. “그 약은 눈병을 치료하는 특효가 있습니다.”
마크리나가 그러한 약속을 했다는 소식이 동정녀들의 거처에서 제게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곧 떠나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초조해 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기적
38. 융숭한 대접을 받고 우리 마음은 흡족해졌습니다. 위대한 페투르스가 몸소 우리의 시중을 들었고 우리 마음을 흥겹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마크리나는 온갖 예를 갖추어 저의 아내를 떠나보냈습니다. 우리의 귀향길은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여행 중에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남자들의 거처에서 본 모든 것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그 역시 자신 안에 아무것도 남겨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아주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듯이 순서대로 이야기를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마크리나가 눈병 치료약을 약속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야기를 멈추고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정신을 놓고 있었던 거죠? 우리가 어떻게 그가 우리에게 했던 약속을, 우리에게 주겠다고 했던 그 안약을 잊어버릴 수가 있었나요!”
저는 그런 부주의함에 괴로워하면서 누군가에게 곧장 되돌아가서 마크리나에게 치료약을 청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 때 유모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우연히 자기 어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 아내는 아이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제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부주의함을 더 이상 탓하지 마세요.”
그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득 차서 큰 소리로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보세요. 우리는 약속된 것을 완전히 받았습니다. 병을 낫게 하는 참된 약을 말입니다. 치유는 다름 아닌 그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기도했고, 그 기도는 이미 효력을 나타냈습니다. 아이의 눈은 신적인 치료제로 치유되어 더 이상 어떤 병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아이를 들어 제 품에 안겼습니다. 저는 복음서에 나오는 놀라운 기적들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손으로 소경들을 다시 보게 해주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오늘 하느님의 여종이 당신께 대한 믿음으로 치유의 기적을 행하였고 그것은 하느님께서 행하신 기적들과 매한가지입니다.” 이 말을 하고나서 흐느낌으로 그는 목이 메었고, 눈물이 쏟아져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 군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맺음말
39. 저는 마크리나와 함께 살았고 그에 관계된 세세한 일까지 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들은 이야기들 또 그와 유사한 이야기들을 이 이야기에 덧붙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경험한 범위에서 이야기 전개의 신빙성을 판단하고, 듣는 자신들의 이해력을 넘어선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빈정거리고 진실과는 거리가 먼 거짓이라고 의심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근이 들었을 때 놀랄만한 수확을 거두어들인 것과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는데도 곡식이 줄어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전이나 후에도 항상 같은 양이 유지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외에 훨씬 놀라운 일들 이를테면 병의 치유, 구마,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참된 예언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모든 일은 믿기 어려운 것들이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정확하게 검증한 사람들에 의해 사실로 인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속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들은 믿음의 정도에 따라 은사를 부여받는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은 적게 부여받고 반대로 자신 안에 믿음이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풍부한 은사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극히 부족하고 하느님의 선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떠한 해도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저는 더 이상 마크리나가 행한 위대한 기적들을 열거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마크리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