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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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30 20:49
성 마크리나의 생애(본문5)
 글쓴이 : 허 로무알도
조회 : 10,532   추천 : 0  
그레고리우스의 안니사 도착
16. 제가 거기에 이르렀을 때 저의 도착 소식이 공동체에 알려졌고, 모든 사람이 저를 마중하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것은 방문객을 존경심으로 맞이하기 위한 그들의 관습이었습니다. 동정녀 무리는 성당 옆면에 있는 그들의 자리에 정렬하여 우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도와 강복이 끝날 무렵, 이들은 강복을 받기 위하여 경건하게 머리를 기울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두 각자의 거처로 물러가 그들 중 누구도 우리와 함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의 사모(師母)는 함께 나오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안내하여 위대한 마크리나가 있는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문이 열리고 저는 그 거룩한 처소로 들어갔습니다. 마크리나는 병으로 끔찍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침대나 요 위가 아니라 흙바닥에 놓인 판자에 깔린 거친 부대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판자 하나가 그의 머리에 괴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목을 비스듬히 받치고 편하게 목을 가눌 수 있도록 하는 이를테면 베게였던 것입니다.

첫 번째 만남
17. 마크리나는 문 가까이에 있던 저를 보고 팔꿈치로 몸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제게로 뛰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미 열 때문에 체력이 소진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손으로 땅을 짚고 침상에서 일어나 경의를 표하면서 저를 맞으려 애썼습니다. 저는 뛰어가 엎드린 그를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 세워 전과 같이 자리에 누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손을 올리고 기도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다시금 은총을 풍성히 내려주셨습니다.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의 원을 모른 체하지 않으시고 당신 종으로 하여금 이 여종을 찾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는 제가 애통해 할까봐 신음소리를 죽이려고 애썼습니다. 또 가쁜 숨을 감추려 애면글면했습니다.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그는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가 먼저 즐겁게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우리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대 바실리우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이야기를 하였고 제 마음은 슬픔으로 미어지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저의 슬픔에도 흔들림 없이 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고차원의 철학 이야기로 이끌어 다양한 주제로 전개시켜 갔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하면서, 시련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섭리를 보여 주었으며, 자기 장래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가 성령의 감도를 받아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말을 듣는 저의 영혼은 고양되어 인간의 본성을 벗어버리고 그의 가르침에 인도되어 천상의 성소 안에 자리를 잡은 듯 느껴졌습니다.

욥과 같은 마크리나의 모습
18. 우리는 욥의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온 몸을 덮고 있던 상처가 곪아 터져서 고름이 몸 전체에 흘러내린 고통을 겪은 욥이 깊은 성찰을 통하여 고통이 자신의 분별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하였고, 육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욥은 활기가 넘쳤고 보다 거룩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마크리나에게서 같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열은 그의 모든 힘을 소진시켜버렸고 그를 죽음의 목전으로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마크리나는 이슬을 머금은 것처럼 몸의 원기를 생생하게 회복하였고, 그의 영혼이 자유로이 천상적 실재를 관상하는데 육신의 쇠약함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영혼의 본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리고 우리가 육 안에서 살아가는 이유와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또 인간이 어떻게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해졌고, 죽음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새 생명으로 우리를 이끄는 구원에 대해서 설명할 때, 마크리나는 참으로 천상에로 고양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무한정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다면 저는 그가 한 모든 말을 차례로 풀어놓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할 때, 마크리나는 성령의 힘에 감도된 듯 보였습니다. 그의 말은 모든 점에 있어 명료하고 논리정연 했을 뿐만 아니라 난해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비탈을 흘러내려가듯 그에게서는 자연스럽게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레고리우스가 휴식을 취함
19. 마크리나는 대화를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여독으로 피곤하실 터이니, 지금은 당신이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그와 만나 그의 거룩한 말을 듣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참된 휴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휴식을 취하는 것을 바랬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전적으로 순명하기 위해 그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근처 정원에서 저를 위해 사람들이 마련한 곳을 발견하고 나무 덩굴 밑 그늘에서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다가올 슬픈 일에 대한 예감으로 마음이 뒤숭숭해서 편히 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목격한 것이 일전에 꿈에 나타난 환시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꿈에서 제가 참으로 보았던 것은 죄에서는 죽었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현존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빛나는 거룩한 순교자의 유해였던 것입니다. 저는 저의 이러한 생각을 전에 제가 꿈 이야기를 해준 사람 중 하나에게 말했습니다.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우리는 다가올 슬픈 일을 예견하면서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마크리나는 우리 마음의 상태를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에게 용기를 주는 소식을 전해왔는데, 우리를 격려하여 믿음을 잃지 않게 하고 그에 대해서 보다 나은 희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마크리나가 자신의 상태가 좋아졌음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었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한 빈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어떤 운동선수가 상대편을 추월하고 경기장의 결승선에 거의 이르러 심판관석에 가까워졌을 때 승리자의 월계관을 보고 마치 그가 이미 그것을 얻었고, 그의 승리가 열광하는 관중들에게 선포된 것처럼 기뻐하는 것처럼, 마크리나도 그러한 느낌으로 활기에 넘쳐있었던 것입니다. 그 소식은 이미 뽑힌 이들을 위해 천상에 마련된 상급을 향해 자신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에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우신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라는 사도의 말씀에 머물러 있는 그에 대해서 더 낙관적인 희망을 가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별에 안심이 되어 우리를 위해 차려진 음식들을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위대한 마크리나는 우리에게 세심하게 마음을 써서 다양하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두 번째 만남
20. 마크리나는 우리가 홀로 지내며 시간을 허비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곧 다시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젊었을 적부터 회상하면서 우리에게 어떠한 역사적 사건의 내력을 진술하듯이 모든 일을 차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우리 부모님의 삶에 관한 추억과 제가 태어나기 전과 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부유했던 부모님의 삶이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높은 평판과 칭송받을 만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통해 하느님의 자애에 경의를 표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친 조부모님들께서는 그리스도를 고백하여 재산을 몰수당하였습니다. 또 외조부께서는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처형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들의 재산은 나뉘어져 다른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 덕분에 집안의 재산은 불어나 당시 누구도 그보다 재산을 많이 소유한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재산이 다시 자녀들의 수에 따라 아홉 등분으로 나누어지고 난 후에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계속 불어나 각 자녀가 받은 몫이 분배되기 전의 부모 재산보다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마크리나는 형제자매들에게 분배된 재산 중에서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차지하려하지 않고 신적 계명에 따라 그것을 사제의 손에 맡겼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마크리나는 삶에서 계명을 실천하였고 그에 따라 자신의 손을 놀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결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부나 봉사를 안락한 삶의 방편으로 삼아 그것에 기댄 적도 없었습니다.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을 그냥 되돌려 보내지 않았으나 정작 자신은 사람들의 자선을 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크리나가 한 선행의 작은 씨앗을 당신 은총으로 자라게 하시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