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자료실 > 수도승영성  

 
작성일 : 07-09-30 20:46
성 마크리나의 생애(본문2)
 글쓴이 : 허 로무알도
조회 : 9,851   추천 : 0  
성 마크리나의 생애(본문2)
 
 
정혼
4. 아이는 커 가면서 이러 저러한 일들을 하였고 특히 양털 가공 일을 아주 능숙하게 해냈습니다. 그러는 중에 청춘의 꽃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나이인 열두 살이 되었습니다. 소녀의 미모는 어떻게든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어서 감추려 해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지역을 통틀어도 그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비할 만큼 경이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화가의 손으로도 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그려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모든 일을 솜씨 좋게 해내고 천체 모습을 모사하여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과업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데까지 이른 재간으로도 그의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그대로 재현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수많은 사람이 그의 부모에게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주의 깊고 바른 분별력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그는 친척들 중에서 좋은 가문이 출신으로 행실이 바르기로 이름난 한 젊은이를 자기 딸의 배필로 점찍었는데 그 사람은 이제 막 학업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딸의 혼기가 찼을 때 아버지는 바로 그 젊은이를 배필로 정해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 젊은이에게는 마음을 부풀게 하는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그는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변론을 하여 자신의 언변을 드러내고, 연설가로서의 자기 명성을 소녀의 아버지에게 결혼선물로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질투가 이런 밝은 희망을 앗아갔고 죽기에는 아까운 나이였던 그를 삶에서 낚아채 가버렸습니다.

동정의 결심
5. 소녀는 아버지의 결정을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위해 정해진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버렸을 때, 그는 아버지의 결정으로 했던 정혼으로 자신은 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자기에게 예정되어 있던 운명이 그제야 비로소 이루어진 것처럼 그때부터는 동정으로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결심은 나이에 비해 너무나 확고해서 사람들의 짐작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미모는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이 그와 결혼하기를 열망했기 때문에 부모는 그에게 자주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뜻대로 정혼했으므로 그것으로 족하고 또 다시 다른 사람과의 혼담을 꺼내는 것은 온당하지 않을 뿐더러 합법적이지도 않은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출생과 죽음이 단 한 번 있는 것처럼 결혼도 단 한 번 있는 것이 사리에 맞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부모가 자신의 배필로 정해준 그 사람이 죽지 않았다고 확고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위해 살았던 그 사람이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여정 중에 있으며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여정 중에 있는 자기 배우자를 배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크리나와 어머니
이러한 논거로 마크리나는 자기를 설득하려는 모든 사람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이런 고귀한 결심을 지키는데 있어 유일한 보호막이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늘 어머니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다른 자식들은 정해진 기간 동안만 자기 태중에 품고 있었지만 마크리나는 늘 꼭 품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계속해서 태중에 그를 배고 있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있어서 딸과 함께 하는 삶이 짐스러운 것이거나 무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딸의 주의 깊은 보살핌을 받는 것은 그에게 있어 많은 하인의 시중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모녀는 서로 간에 유익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영혼을 돌보고 딸은 어머니의 육신을 돌보았던 것입니다. 딸은 그에게 요구되는 온갖 가사 일을 하면서도 특별히 어머니를 위한 식사를 손수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그에게 주업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후에 전례 봉사를 도왔고 남은 시간엔 손수 일을 해서 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살고자 했던 삶의 방식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기 어머니가 짊어져야 하는 모든 짐을 함께 나누어 졌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부양해야 하는 네 아들과 다섯 딸이 있었고, 재산이 세 지역에 흩어져 있었던 까닭으로 세금을 세 수령에게 각각 납부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상태에서 그런 상황은 어머니에게 온갖 괴로움을 가중시켰습니다. 마크리나는 이 모든 일에 있어 어머니와 함께 걱정하고 그녀의 슬픔의 무게를 덜어드리면서 어머니와 고생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어머니의 보호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눈은 끊임없이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고 그것을 장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삶의 모범이라는 경탄할 만한 방법으로 어머니에게 같은 이상 - 저는 이것을 철학의 이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에 이르는 방향을 제시하였고 점차로 어머니를 영적이고 순수한 삶으로 인도해나갔습니다.

바실리우스
6. 어머니가 각자의 처지와 의향에 따라 마크리나의 자매들에게 적합한 혼인을 성사시켰을 때, 마크리나의 동생 대(大) 바실리우스가 오랫동안 수사학을 연마하고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마크리나는 그가 자신의 언변에 대한 자부심으로 지나치게 우쭐거리고 모든 고관을 업신여기며 귀족과 지방관들에게 거드름을 피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마크리나는 바실리우스를 그렇게도 빨리 철학의 이상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실리우스는 세상의 명예를 마다하고 자신의 언변이 가져다준 영예를 업신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가난과 덕행으로 나아가는데 어떤 장애도 없는 삶의 채비를 갖추어, 손노동을 하면서 고되게 살아가는 삶으로 도망자처럼 달아나버렸습니다. 바실리우스의 삶과 행실로 인해서 그의 이름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곳에 알려졌고 그의 명성은 덕행으로 유명했던 모든 이를 능가해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긴 설명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야기를 다시금 마크리나에게로 돌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수도원처럼 변화된 가정
7. 마크리나는 세속적인 삶의 그럴듯한 구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린 후에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과 귀부인과 같은 행색을 버리고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하인들의 수발을 더 이상 받지 않도록 설득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주변을 바라보고 그의 곁에 살고 있던 동정녀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게 함으로써 노예와 하녀들을 자기 자매 또는 자신과 동등한 사람들로 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여담으로 이 일에 관한 짧은 다른 일화들을 덧붙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들을 이야기하느라 이 동정녀의 고매한 인품이 더 잘 드러나는 다음과 같은 일화들을 그냥 지나쳐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