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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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27 21:46
원칙과 자세
 글쓴이 : 허 로무알도
조회 : 8,285   추천 : 0  
"원칙과 자세"

"장작을 패며 나는 배운다.
싸움꾼의 원칙과 자세에 대하여.
두 눈 부릅떠 결을 겨눌 것.
옹이는 절대 피할 것.
순서는 마른 것에서 젖은 순으로,
한 두 시간이 아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평생을 도끼질 할때
원칙과 자세가 바로 생명이라는 것을."
이재무의 "나무꾼"이란 詩 중에서

이 시를 읽으며 우리 수도생활과 너무 비슷하단 생각이 들어 인용해 보았습니다. 나무꾼에게 있어 나름대로의 원칙과 자세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도생활에 있어서도 원칙과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봅니다. 인생을, 수도생활을 어떤 원칙에 의해서,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 나름대로의 원칙과 자세 없이 되는 대로 살다가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단기전에는 그런 대로 임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장기전에는 도저히 대처하지 못합니다. 또한 원칙과 자세가 잘못되어도 문제가 됩니다. 원칙과 자세가 잘못되면 공연히 고생만 하고, 세월만 낭비하게 됩니다. 올바른 원칙과 자세를 터득하고 몸으로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마도 살아가면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배운 나름대로의 원칙과 자세가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대인관계에 있어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 상대방의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관계에 있어 무엇에 우선을 두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각자의 원칙과 자세가 있으리라 봅니다. 자신의 인생 체험에 의한 삶의 지혜라면 모두 가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런 원칙과 자세가 있을까 우려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가치를 손상시키고, 인격과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이런 것들입니다. 손해보는 짓은 절대 하지 말 것(얌체형), 말을 해서 내게 불이익이 돌아온다면 절대 침묵할 것(침묵의 덕을 도용하는 사기꾼형) , 내게 이익만 된다면 더러워도 참을 것, 즉 온갖 모욕과 수모도 감수인내 할 것(인내지덕 도용꾼형), 출세를 위해서라면 속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할 것(아부형), 강한자에겐 겸손을, 약자에겐 근엄함과 엄격함을 유지할 것, 즉 강자는 머리 위로 떠받들고 약자는 철저하게 밟아 뭉갤 것(교활한 여우형), 출세 앞에, 떡 앞에 지조나 신의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장기이식형- 간도 쓸게도 다 내어준형) 등등입니다. 이 모두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사심이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물론 이런 원칙과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방심하는 틈을 타 언제라도 우리 안에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늘 깨어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나 사건 앞에 이해득실을 생각하고 어떤 거창한 논리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논리나 지식, 이론이나 머리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위험은 흔히 지식인들, 소위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기 쉽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배운 지식으로, 논리로, 머리로 그때그때 상황에 민첩하게 변신하며 정권에 아부해 온 사이비 지식인들의 작태요 삶의 방식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사심 없는 마음을 부지런히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강자강 약자약의 처세술을 몸에 익혀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약자들의 편에 서서 싸울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게 그리스도의 참된 투사, 전사라 생각합니다. 약자는 깔아뭉개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소위 힘있는 자에게는 바짝 붙어 온갖 상냥함과 충성심을 맘껏 발휘하는 이런 모습은 가장 추하고 더러운 모습입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 절대로 이해관계로 맺어져서는 않될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지만 결국 혼자 가는 것입니다. 어떤 동료도 결국 내 삶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누가 보건 안 보건간에 한결같이 행동하고, 소신껏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무의도인 無衣道人, 즉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집착하거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길을 가는,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자유로운 인간을 말합니다. 이 무의도인의 자유로움으로 홀로 우뚝 서서 타인의 지표, 길잡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 수도원이라는 울타리, 수도생활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세상의 소리에 무관심하고 둔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심지어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수도생활은 세상과 동떨어진 거룩한 천사들의 생활이 아닙니다. 수도생활, 수도원, 자기 자신이라는 울타리 속에 폐쇄되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우리 몸은 수도원에, 수도생활이라는 틀 안에 있지만 우리 관심과 마음은 늘 세상을 향해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