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수도승영성

RB 6장은 베네딕도가 RM에서 가장 많이 삭제한 대표적인 장이다. 이 장은 침묵에 대해 길게 다루고 있는 RM 8-9장의 약 10% 밖에 되지 않는다(일반적으로 RB:RM은 1:3이다). 그러나 베네딕도는 침묵에 대한 매우 엄격한 교리를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RM8-9장을 따른다. 여기서 우리는 초기 수도승들은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분명 그릇된 인상이다. RB에는 대화가 수도승들의 삶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이 있다(RB 26,2; 42; 43,8; 49,7 참조).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지속적인 침묵을 지켰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우리의 문맥에서 볼 때 침묵은 쓸데없는 말들과 공격적인 말들에 대비된다. 침묵은 좋은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참된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할 때와 말을 하지 않을 때를 아는 것이다. 요한 까시아노는 상황에 따라 침묵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담화집] 16,18에서 그는 '애덕'에 의해 이야기할 필요성이 있을 때 단순히 말하기를 거부하는 '몹쓸' 침묵을 비판한다. 그는 이 경우 그들이 형제들을 화나게 한 죄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적극적인 가치의 결핍 또는 말하는 것보다 더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교만한 침묵을 의미하는 '공허한 침묵'이 있을 수 있다. 참된 침묵은 내적인 침묵에 있다. 외적 침묵을 아무리 훌륭히 실천한다 하더라도 마음 속으로 형제들에 대한 비판과 불평, 불만으로 평화롭지 못할 때 그것은 오히려 수다스러운 것만도 못하다. 참된 침묵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그분의 평화 속에 머무는 것이다. 분별이 없는 마음의 상태, 온전히 비어 있는 그러면서도 사랑으로 충만한 空 또는 無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침묵은 사랑과 애덕의 모습을 띠어야 한다.

앰브로스 와튼(Ambrose Wathen)에 의하면 베네딕도는 RB 6장에서 침묵이 단순히 '소음의 결핍'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삶에 대한 근본적으로 진지한 태도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수도승에게 있어 침묵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들음'이다. 들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권고는 아마도 RB 3장에 있지 않나 한다. 거기서 아빠스는 결정에 앞서 집회에서 모든 이의 의견을 듣도록 권고되고 있다. 침묵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되었다. 고대 수도승들에게 있어 '하느님의 일'(Opus Dei)은 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였다.

이처럼 침묵은 그 자체 안에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은 '애덕', '들음', '기도'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