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수도승영성

겸손은 베네딕도가 그리스도인 삶과 수도생활에 대한 자신의 가장 중요한 통찰들을 그 아래 한데 모으는 규정이다. RB 7장은 까시아노의『제도서』4,39과 RM 10장에 토대를 두고 있다. 까시아노는 영적 등정에 대한 세부적이고 단계적인 프로그램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지 않는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지 겸손을 통하여서만 우리 영적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겸손은 본질적으로 '자신에 대한 죽음' 즉 '자아포기'이다. RM 10장은 [제도서] 4,39을 상당히 확대하였고 또 풍부하게 하였다. 스승은 까시아노의 추상적인 지침을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사다리' 혹은 '계단'은 영적 등정을 상징하는 고전적인 비유임: 야곱의 사다리, 요한 끌리마꼬의 천국의 사다리, 귀고 2세의 수도승들의 사다리 등등)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변형시켰다. 사실 현대인들이 이 장을 읽고 극단적으로 겸손한 태도에 대한 강조에 매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현대의 수도자들이 RB 7장에서 접하게 되는 보다 진지한 문제는 그것이 창의성과 열정적인 진리 추구를 위한 공간을 거의 남겨 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데 있다.

이 장은 RB 72장과 함께 보아야 한다. 베네딕도에게 있어 RB 7장은 영성의 토대이며, RB 72장은 그 절정이다(오늘날 우리의 영성에 부합하는). 가장 중요한 원천은 무엇보다도 성서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모든 바가 언급된다. RB 72장의 경우는 신약성서가, 그리고 RB 7장의 경우는 구약성서와 시편 25가 그 원천이다. 요한 까시아노의『제도서』4,39을 보면, 겸손의 사다리(단계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 열 가지 표지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제1단계는 RB와 같이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Timor Dei)이지만, 베네딕도는 겸손의 첫 째 단계에서 죄와 악습에 떨어질 수 있는 인간 인격의 여섯 가지 영역(생각, 혀, 손, 발, 자기 뜻, 육체의 욕망) 가운데 '혀', '손', '발'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생각', '자기 뜻', 육체의 욕망(이것들은 보다 내적인 것들임)'에 대한 설명을 보다 발전시키고 있다. RB는 RM과 실제로는 거의 비슷하나, RM에 비해 덜 논리적이다. RM은 '손', '발', 그리고 '천국의 기쁨' 또한 언급된다. RM 안에서 겸손의 사다리는 천국에서 끝나는 반면(종말론적 결론), RB 안에서는 지상에서 끝난다(영적인 결론). 다시 말하면 RM은 직접 종말론(천국에 대한 장황한 묘사)으로 건너가면서 '행해야 하는 바'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반면, RB는 사다리에 대한 상징적 해석을 줄이고 대신 두려움을 몰아내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하는 방법'에 대해 언급한다. 이런 의미에서 RB는 보다 실재적이다.

이 장에는 상당히 중요한 하나의 체험, 즉 '우리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 안에서 하느님의 여정'이라는 체험이 있다. 겸손은 하나의 노력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은총'과 같은 것이다. 베네딕도에게 있어 '하느님의 행위'가 보다 강조된다. 또한 여기에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 작은 변경들이 많다. 이 장의 핵심은 20절인데, RB 전체에서 유일하게 한 번 여기서 '뜻' 혹은 '의지'(volontas)란 단어가 긍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심에 '하느님의 뜻'이 놓여 있다. 즉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RB와 RM의 표현 안에서 그리스도교인의 겸손은 금욕적인 것이라기 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겸손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RB 7,34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결국 우리가 무엇에로 부르심을 받았는가를 알기 위하여 예수의 겸손을 이해해야 한다.

겸손의 이 모든 단계들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들이다. 이 단계에서는 인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단계의 정상에서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timor Dei)에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amor Dei)에로의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인간적인 노력이 강조되던 人爲에서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움직여지는 無爲에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한 가장 고질적인 악습은 '교만'이다. 이것을 대적할 수 있는 덕은 바로 '겸손'으로서, 겸손은 모든 덕들의 정점이며, 우리를 다시 하느님께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중요한 덕목이다. 겸손은 인간 성숙의 표지이기도하며, 특히 사막 교부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