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수도승영성 > 아빠스에 대하여(RB 2; 27; 28; 64)

1. 목자와 의사로서 아빠스의 역할

베네딕도는 '목자'와 '의사'의 이미지를 통해 아빠스의 두 가지 상반되어 보이는 듯한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RB 27-28장 참조). 목자로서의 아빠스는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를 잘 돌보는 어질고 인자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드러내야 하며(27장), 동시에 의사로서의 그는 자녀들의 잘못을 교정해 주는 엄한 아버지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28장). 그러나 오늘날 이 역할은 제대로 실현되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의사'로서의 역할은 더더욱 수행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누구나 남에게 좋은 말을 하기는 쉽지만, 쓴 말을 하기는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렵고 껄끄럽기에 대개 꺼리게 된다. 하지만 후자가 없을 때 공동체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빠스는 개인과 공동체의 선익을 위한 것이라면 형제들의 생활에 개입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인생에는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시기가 온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들을 개인이 기대할 수 없거나 또는 시도할 용기가 없을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동정적이면서도 객관적인 분별을 해줄 아빠스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것에 개방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아빠스를 갖지 못하며 따라서 회수도승들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아빠스는 결코 베네딕도회 체제 안에서 하나의 절대 군주가 아니다. RB에는 아빠스에게 부과된 많은 제한들이 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제한은 지옥 불에 대한 위협이다. 베네딕도는 아빠스에게 그가 받아들인 무거운 책임감에 대해 얼마나 가혹하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따라서 이 두 가지 역할은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목자로서 그리고 동시에 의사로서 아빠스의 역할이 구현되어야 하리라 본다.

2.아빠스의 영적인 자질(RB 64)

(1) 긍정적 자질 : '하느님 법에 정통', '정결', '절도', '자비심'
이는 가톨릭 서간(I디모 3,2-4; 디도 1,7-9; 2,2-5)에서 주교들에게 제시되는 자질들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빠스가 주교와 같다고 결론짖기 보다는 오히려 수도적 지도력은 모든 선한 그리스도교 지도력의 지질들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2) 부정적 자질 : '부산떨음', '소심', '과격', '고집', '질투', '의심'
여기서 핵심 단어는 '부산떨지 말 것'(64,16)이라는 말로서 이는 '야훼의 종'을 묘사하고 있는 이사야 42,4에서 온 단어이다. 베네딕도가 마음 속에 이 야훼의 종을 생각하고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몇 절 앞에서 이사야 42,3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빠스는 예수의 구약의 모습 즉 부드럽게 인도하여 결국 공동체에 생명을 가져다주는 '야훼의 종'에 그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3. 아빠스 제도에 대한 견해

오늘날 우리에게 아빠스 제도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으며 또 설득력 있는 제도인가는 의문이다. 사실 현대의 아빠스는 종종 영적인 사부로서보다는 오히려 행정적인 장상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아빠스의 고유한 의미는 영적인 사부이다. 따라서 그의 역할은 일차적으로 형제들의 영혼의 문제를 돌보는 것이다. 아빠스가 이러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단지 형제들의 행정적인 문제와 수도원의 관리에 치중한다면 그의 존재이유는 사라진다. 행정가 또는 관리자로 전락해 버린 아빠스 제도는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연합회 일각에서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아빠스 임기제는 바로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현대에 맞는 제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장상이 정기적으로 바뀌게 됨에 따라 공동체가 안정되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장점도 지니고 있다. 즉 공동체가 정체되지 않고 늘 새롭게 움직이고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 변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지 말이다. 한 체제가 너무 오래 지속되다보면 체제 안주적이 될 위험이 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란 말을 되새겨 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