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HOME > 자료실 >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  
제 목 :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가해, 2017.08.06) - 고 이사악 신부 17-08-11 09:36: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2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뚱뚱해졌다는 소리를 들은 지는 꽤나 되었고 요사이는 얼굴빛이 안 좋다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할 말이 궁색하면 그냥 갈 일이지, 겨우 인사만 하는 사이인데도 꼭 제 간을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원래 까무잡잡하게 태어났다고 말하고는 소매를 걷어 올려 속살도 그렇다고 보여줍니다. 예전에 구미 가톨릭 근로자 문화센터에 처음 부임했을 때도 필리핀 노동자들이 저를 보고 필리핀에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얼굴이 까맣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가 원망스럽지만, 우리 어머니도 저를 보고 메밀수제비 같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부가 뽀얀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에 직장 동료의 권유로 단전호흡을 배웠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일년전부터 수련을 했다는 그 동료의 얼굴이 달덩이처럼 빛났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하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부푼 기대 속에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일 년쯤 지났을 때, 무슨 사진을 찍는다고 했습니다. 몸에서 어떤 파장이 나오는지 보여주는 사진이랍니다. 노란색 계통이 좋고 파란색 계통은 나쁘다고 했습니다.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의 몸에서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황금빛 광채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사진은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검은 색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예수님의 변모 사화를 읽을 때마다 그때 그 일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높은 내공을 쌓으셨으면 그렇게 휘황찬란한 광채가 났을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예수님 삶의 전환점이 됩니다. 복음 성경에는 예수님의 기이한 탄생과 영특한 어린 시절이 부분적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공생활 이전의 예수님의 삶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습니다. 복음 성경은 광야에서 시작해서 골고타에서 마감하는 불과 삼년 남짓한 예수님의 삶을 공개할 뿐입니다. 이 사건은 이를테면 예수님께서 가장 잘 나가던 시점에 일어난 일입니다. 인생의 황금기, 최절정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대충 짐작하실 겁니다. 잘 나가던 연예인들이나 사업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추락하는지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세간에서는 잘 나가던 사람들이 추락하는 원인을 이렇게 말합니다. 초심을 잃었다.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은 이후 예수님의 행보를 보면 아마도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갈릴래아 출신 시골뜨기, 요즘 젊은이들 말로 듣보잡이던 예수님은 어마어마한 청중 동원력을 갖춘 스타급 강사로 떠올랐고, 숱한 기적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으며, 못 고치는 병이 없는 명의라고 내세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외세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영웅을 염원하는 유대 민중의 시각도 부담스럽기 느끼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가 왔음을 깨닫고, 당신을 진정 이해해줄만 한 제자들만 따로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소명을 분별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거룩한 변모 사화는 공관복음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며 전후에 배치되는 내용도 거의 일치합니다. 변모 사화 전후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두 차례나 예고하였고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르단 강에서 세례 때 받은 소명으로 돌아가자는 예수님의 결단과 결심이 그만큼 확고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이야기 하면서 반드시라는 부사를 썼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했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야 하는 일이 자신이 택한 길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소리입니다.

저마다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때로는 돌아가고 더디게 가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의 길을 가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쳐도 가야할 길로 나를 이끄는 힘을 운명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만사가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용쓰지 말고 아무렇게나 대충 살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야할 길을 분명히 깨달아야 자신을 불태우며 살 수 있습니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자신 앞에 펼쳐진 길이 고난의 길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튼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하신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고 확고한 결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스승의 소명을 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장차 영광의 길에 들어설 스승을 후광으로 삼고 싶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일이 결코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며 반발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자를 사탄이라고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운명이자 소명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운명은 가야할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변모 사건을 통하여 당신 가야할 길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길인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겁내지 말라고 안심시키며 제자들과 당신의 소명을 공유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까지 그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변모란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변화하려면 고통과 고난이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변화를 추구한다면서 스스로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모든 게 한 순간에 바뀌고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면 좋겠지만, 우리가 생겨먹은 꼴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강박적으로 변화를 원하며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두려움마저 느낍니다. 하지만 변화란 우리가 가진 기질이나 성향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꾸고 싶은 그 모습, 성에 차지 않고 맘에 들지 않는 그 모습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변화의 목표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늘 나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사하신 근원적인 빛, 우리의 얼굴에서, 우리의 온 존재에서 그 빛이 드러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 복음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루카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변화의 출발점이 하느님의 면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그 지점, 바로 기도하는 그 자리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관조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장애물을 깨닫고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 자신을 변모하는 일은 특히나 우리 수도자의 본분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화는 파스카의 신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미리 알려줍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신앙인들은 더욱 예수님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자비로운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합니다. 만일 이에 역행하는 현상을 보인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새 계약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구원을 보증하는 진리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만드는 추문거리로 전락할 따름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내며 세례성사 때 받은 우리의 소명을 상기해 봅시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투신하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 번 확인합시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변모되었는지 아니면 변질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피는 한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추천하신 회원님 : 0 명

♡한마디의 아름다운 댓글이  관리자님과 우리 모두의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조회 :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