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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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 제5주일(가해, 2017.04.02)-서 베네딕도 신부 17-04-03 11:09: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87   

  그를 풀어주어 걸어가게 하여라.”(요한 11,44)

사람이 언제고 죽는다는 사실은 잘 알지만, 깨닫긴 어렵습니다. 아는 것과 깨닫는 것, 이것들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바로 변화에 있을 것입니다. 앉아서 가만히 죽음을 묵상하다보면, 저 같은 경우 그것이 결국, 건강에 대한 걱정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 귀천의 저자 천상병 시인은 죽음을 친근하게 표현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나이가 들어 내 육체가 의지와 달라지기 시작하면, 저절로 죽음을 준비하고 생각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죽음은 곧 삶의 일부이고, 우리 인생의 연장선이며, 부활을 믿는 신앙인들의 피할 수 없는 관문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발걸음이 지나칠 문턱이면서 동시에 새롭게 변화될 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죽음은 지금의 삶에게 계속해서 말을 겁니다. 죽음이란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이라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내 일거수일투족을 조심스럽게 만듭니다. 죽는다는 사실만 떠올려도, 우리의 관계는 유연해질 수 있으며 욕심과 집착 탓에 꽉 움켜쥔 두 손을 자유롭게 풀 수도 있습니다. 제아무리 사회가 죽음에 대한 성찰의 시간마저 빼앗고, 삶과 죽음을 전혀 다른 것으로 갈라놓으며, 가까이 두기를 극히 싫어할지라도 말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자연스럽듯, 죽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임을 늘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듣게 된 길다란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라자로를 통해 인간의 죽음과 맞대면하셨습니다. 그의 누이들과 유다인들이 시신을 매장한 채로 그저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분은 다시 돌무덤 앞에 서서 그의 죽음을 응시하셨습니다. 또한 죽을 운명인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 때문에 북받치는 감정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눈물을 보이셨지만, 결코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외면하거나 멀찍이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것을 직시하며 동시에 거기에 함께 하시고, 당신 자신이 인간에게 생명을 주러 오신 분임을 모든 이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사실 예수께서 흘리신 인간적인 눈물보다 더 인상 깊은 말씀들이 오늘 복음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라자로가 죽었다는 사건을 가운데에 두고 앞뒤 맥락을 잘 살펴보면, 다양한 믿음의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라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전갈에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죽음과 고통이 결국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영광 때문에 인간이 죽고 고통 받아야 하는가라고 삐딱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우리의 슬픔과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모습,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당신의 권능, 인간이 죽지 않길 바라는 사랑과 자비가 드러납니다. 이 점을 강조하시고자 라자로가 완전히 죽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할 수 있게끔 계신 곳에 한참을 더 머무르십니다. “라자로는 죽었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후 진행되는 그의 소생 기적을 더욱 두드러지게 합니다.

소생과 부활은 엄연히 다릅니다. 소생은 과거의 자기로 되살아나는 것이지만, 부활은 새로운 자기 자신으로 다시 태어남입니다. 다만, 공통적으로 둘 다 먼저 죽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점점 가까워진 주님의 수난과 죽음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여겨진다면, 우리의 부활도 그만큼의 거리를 둘 것입니다. 이제, 거룩한 죽음과 마주 하기 위한 용기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 우리가 제1독서로 들은 에제키엘서를 통해 그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어 (...)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살리겠다.” 라고 말씀하신 하느님의 음성을 가슴에 새기고 인생에서 멀찍이 밀어낸 죽음과 마주합시다. 라자로의 소생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이라면, ‘반드시 살리겠다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일상에서 찾아오는 희생과 절제를 받아들여 부활의 기쁨으로 나아갑시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거대한 돌에 속박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늘 희망하십시오. 영원한 삶을 믿는 우리 신앙이 죽음을 넘어 부활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늦었지만, 이제야 건져 올려진 세월호처럼 우리는 결코 죽음의 수면 저 아래에서 깊이 잠만 자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기필코 각자가 지닌 영혼의 진실한 모습을 간직한 채, 새롭게 변화되어 영원한 삶으로 들어갈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내 이웃의 고통을 방관할 수 없으며, 고통 받는 이웃을 위로함으로써 나에게 찾아올 은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와 슬픔 속에서 절망하는 이들 곁에 다가가, 위로의 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바로 여러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늘 눈앞에 두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 이 말씀은 사실 지금의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라는 의지를 불태웁니다. 의식 저편에 멀찍이 버려둔 죽음이 아니라, 매순간 내 의지를 내려놓고 공동체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한 죽음입니다. 그러면 부활의 기쁨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부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나를 감싸고 있는 욕망이란 이름의 아마포 수의를 벗어 던질 수 있고, 졸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워주실 하느님을 체험할 것입니다. ‘나 이제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한 시인의 마음을 우리도 간직하고, 삶과 죽음에 대하여 가볍지만 진중하게 마주 대할 은총을 청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사순시기,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모진 고생 끝에 올라간 예루살렘 길 저 너머, 부활을 향해 열린 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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