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나해 사순 제1주일

① 창세 9,8-15 ② 1베드 3,18-22 ㉥ 마르 1,12-15

HOMILIA

  지난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시작으로 우리는 사순시기에 들어갔습니다. 재의 수요일 복음이 전해주듯 사순시기에 우리가 지켰으면 하는 것은 바로 단식과 자선, 기도입니다. 하지만 흔히 그렇듯이 왜 우리가 이런 것들을 해야 하는지, 유독 이 사순시기에만 그렇게 해야 하는지, 또 아름다운 봄이라는 계절을 둘러싸고 있는 사순시기에 기쁘고 즐겁게 지내지 않고 그렇게나 고통과 고난을 강조하는지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고통과 고난을 당하신 것과 오늘 복음에서 나오듯 40일 동안 광야생활을 하신 것, 또 이스라엘 사람들의 40년간의 광야생활을 기억하면서, 그러니까 우리도 이래야 한다고 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짜맞춘다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나랑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사순시기에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외에도 유독 우리의 죄를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라고 하셔서 그럴까요?

  우리 수도원에는 고해성사의 달인께서 한 분 계십니다. 모든 형제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꽤나 많은 형제들이 고해성사의 달인이신 한 독일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봅니다. 아주 영성적으로 깊은 조언을 해 주셔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른 형제들의 마음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일단 부담이 없어 좋습니다. 물론 편한 분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마음속에 걸리는 큰 일들도 쉽게 꺼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나, 큰 잘못을 저질렀든 작은 잘못을 저질렀든 “남에게 상관하지 마십시오”라는 조언과 함께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세 번씩 바치라는 보속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고해성사를 주게 되니 다른 형제자매들의 고해를 통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죄의식, 죄책감에 사로잡혀 사소한 것까지도 나를 상처 입히고 괴롭혀왔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대개의 할머님들은 그렇게 고백하십니다. “아이고, 사는 게 죄지요.” 할아버지들은 그러십니다. “뭐, 다 그렇지요 뭐. 끝입니다.” 한편 중년의 어머님들은 우리 애들 아빠가 어떻고 저떻고부터 시작해서 누가 우리 집에서 돈을 꾸어갔는데 아직 갚고 있지 못하다는 집안 얘기까지 남 얘기만 한참 하시다가 결론으로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로 끝을 맺으십니다. 그러면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거지?’하고 한참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는데, 특별히 판공 기간에 고해성사에 대한 의무감에서 성사를 봐야하니깐 충분한 자기 모습 바라보기 없이 하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다른 한 측면을 본다면 내가 잘못한 것뿐 아니라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 심지어는 좋은 일들까지도 모두 죄라고 받아들여 나 자신이 도저히 잘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죄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고 나 자신을 괴롭히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물론 영적으로 세심하신 분들은 더 하시고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죄, 죄를 강조하고, 원죄 의식을 심어놓은 그동안의 교회의 탓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비하하고 오히려 거기에서 위안을 찾게 되는 우리 자신의 나약성에서 근거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죄를 저지르기 이전에 이미 이렇게 존재하고 있고, 또 아담의 원죄라는 것 이전에 하느님이 ‘보시니 좋았다’라고 하신 ‘사람’이 먼저 복된 상태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우리 삶에는 우리의 의지이든 아니든 실수와 잘못이 계속해서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또 내가 원하지 않았어도 우리 주위의 상황이 나를 잘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끌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모두 다 내가 죄를 지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황량하고 고독하고 고통스럽고 힘들기만 할 것 같은 광야로 가셔서 40일간 머무르시면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다고 전합니다. 이 대목만 본다면 우리의 사순시기는 ‘예수님도 이러셨는데……, 예수님도 이렇게 고통을 받으셨는데……’하며 가슴을 치고 죄를 고백해야만 마땅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대목에는 무려 5부류의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영(靈)을 비롯하여 주인공 예수, 유혹자 사탄, 들짐승들, 천사들이 등장합니다. 복음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수께서 스스로 사막에 들어가셨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본인이 유혹받기를 원하셨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질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의 세례 때에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셨다는 바로 그 하느님의 영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냈다’고 합니다. 이 대목은 그분의 광야생활이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는 이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시지만, 동시에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시고, 천사들이 시중을 들기도 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광야가 옛적 영성가들이 즐겨 말하듯이 거창하고 아주 거룩함으로 충만한 세상과 분리된 어떤 장소이거나 반대로 영적 전투를 벌이는 특정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광야는 바로 세상, 내가 지금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이곳을, 이 현실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는 매일, 매 시간, 매 순간, 1분, 1초에도 몇 번씩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자칫하면 실수와 잘못으로 심지어는 죄로 나아갈 수 있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들짐승들과 같이 본능에 의하여 선택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을 ‘죄’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악으로 끌릴 수도 있는 나약한 본성을 타고 났지만 세례로 인하여 천사들과 같은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은총이 우리를 항상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머무르는 우리는 바로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받아들이고 이 세상에서부터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광야 생활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보냄받은 이 당연하고 평범한 삶이 온갖 종류의 선택과 유혹들로 넘쳐나지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본성이 늘상 죄에만 빠져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으로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첫 복음이자 마지막 복음이요, 유일한 복음인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시기나 장소가 있다거나 특별히 자신을 괴롭히는 삶을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 자그마한 선택이나마 하느님 쪽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거창하게 번역한 ‘회개’라는 표현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조금 마음을 고쳐먹고, 한번이라도 하느님 쪽을 더 바라보는 작은 삶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오늘 제1독서가 말하는 노아 시대 홍수 이후의 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늘상 약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멸망에 이를 정도의 정화를 하시지 않고 우리 본성을 상징하는 짐승들과도 계약을 맺으시면서 그 징표로 ‘무지개’를 선사하십니다. ‘무지개’로 번역된 히브리말은 본래 ‘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늘과 땅에 걸쳐진 하느님의 강하면서도 굳은 도우심을 보여줍니다. 오늘 노아와 맺으시는 하느님의 계약은 서로가 의무를 지는 그런 계약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 혼자만 의무를 지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하느님 도우심의 의무를 이 땅에서, 바로 이 세상에서, 바로 이 자리에서 받아들이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는 명백합니다. “사람아. 너는 사람이다. 나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너 자신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지 마라. 다만 바로 이 자리에서 너의 모습을 바로 보고 그런 너를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나의 도움을 받아들여라. 괜찮다.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이 땅에서 복되게 살아라.”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