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오늘의 강론 > 연중 제6주일: 주님의 마음(사랑)

서울 수도원, 봉헌회 미사(2012년 02월 12일 오전 10시 30분)

베네딕도 성인은 규칙서에서 겸손의 12째 단계를 말하면서 제일 마지막 최고 겸손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습니다. “수도승이 마음으로뿐 아니라 몸으로도 자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겸손을 항상 드러내는 것이다”(7,62).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환자도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겸손함을 몸으로 드러냈습니다. 무릎을 꿇은 자세가 그것입니다. 온갖 노력을 다해도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을 때 우리는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힘에만 의지하던 것에 벗어나 참된 자기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것을 하느님 앞에 드러내는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사실 겸손은 아픔을 수반합니다.

이런 겸손한 사람의 고통 앞에 주님은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들다”라는 말의 그리스어는 동사 “스플란크니조마이”(splanchnizomai)입니다. 이 단어를 직역을 하면 “창자가 움직이다” “내장이 찢어지도록 아프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창자가 사랑과 공감의 자리로 보았습니다. 마음만 아픈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통증도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 동사는 마르코 복음에서 3차례 더 나옵니다. 마르 6,34(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과 8,2(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4000명 먹이신 기적)과 9,22(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소서... 아이의 구마)에서 나옵니다. 특히, 루카복음에서는 같은 동사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10,33: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와 탕자의 비유(15,20: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에서 사용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과 탕자의 아버지가 지녔던 그 마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그 감정은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심이 아닙니다. 연민이나 동정심은 높은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드러내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공감, 그러니까 상대방의 아픔을 마음뿐 아니라 몸으로도 느끼는, 그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플 때 어머니는 “내가 대신 아파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의 아픔에 하나가 된 것처럼 주님도 나병환자와 온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차원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활동은 바로 사랑의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랑 때문에 움직이셨고 사랑 때문에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겸손의 마지막 단계인 12째 단계까지 다 오른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할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며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좋은 습관과 덕행에 대한 즐거움에서 모든 것을 하게 될 것이다”(7,67-69 참조)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자신을 낮춘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마음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나병환자를 치유한 것입니다.

사랑이 참다운 공감 능력입니다. 사랑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하느님의 다리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랑의 힘이 교환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사랑이 사람을 살립니다. 사랑이 치유를 합니다. 사랑만이 사람답게 만드는 진정한 기적의 힘이며 하느님의 힘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