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오늘의 강론 > 성탄대축일 밤미사(2011)

우리 수도원 선배 신부님이 녹음 파일을 보내주었습니다. 며칠 전 선배 신부님이 서울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구걸하는 한 맹인을 만났습니다. 이 맹인은 한 손에는 작은 프라스틱 바구니와 다른 손에는 지팡이를 짚어가며 가톨릭 성가 91번 “구세주 빨리 오사”를 부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이 맹인 뒤를 쫓아가며 맹인이 부르는 성가를 녹음했습니다.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지하철 소음과 지팡이 짚는 소리가 있어서 잘 들으셔야 합니다.

“구세주 빨리 오사 어두움을 없이하며 동정 마리아에서 탄생하옵소서. 우리 죄를 잊으시고 참회하는 자녀들을 너그러히 사하옵소서. 이 세상 모든 유혹 항상 우리 괴롭히니 이 어려움 이기게 도와주옵소서.”

이 맹인의 세례명은 ‘안토니오’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신부님이 함께 내려서 물어보니, 이분은 참으로 ‘천사’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모은 돈으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몸을 못 움직이는 다른 맹인을 도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너무나 감동을 받아 가지고 있던 돈을 몽땅 그분께 드렸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참 좋은 분들이 많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천사 맹인은 참 빛을 본 분이십니다. 비록 외적인 눈은 빛을 보지 못하지만, 내적인 눈, 마음의 눈, 사랑의 눈으로는 빛을 본 분이십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 있는 우리가 맹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린 정상인이라고 자부하지만 실은 우리가 장애인이 아닐까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내려오신 빛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 사랑의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 따뜻한 마음, 넉넉한 마음만이 빛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빛이신 아기 예수님이 바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 없다’ 고, ‘내 마음에는 어둠만 있다’고, 또 ‘사랑이 메말랐다’고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우리 마음에 지금 분명 아기 예수님께서 사랑의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가톨릭 성가의 가사대로 “구세주 빨리 오사 어두움을 없애”달라고 신음하는 형제자매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어두움은 우리가 밝혀주기 위해서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화를 우리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성탄의 기쁨을 더 크게하고 성탄의 빛을 더 밝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탄생하신 빛이신 아기 예수님은 빛나셔야 합니다. 이 빛을 더 전파하는 몫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 모두 빛의 도구가 됩시다. 사랑의 도구가 됩시다. 성탄을 축하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