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일 강론

제1독서 : 이사 45,1.4-6 제2독서 : 1테살 1,1-5b 복음 : 마태 22,15-21

INTRO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시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리시오”(마태 22,21). 그러면, 지금 우리 자신의 모습은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HOMILIA

  작년에 시편반주를 배우기 위해 잠시 독일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갓 20대 초반의 어린 수도 형제들부터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수염을 기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수염을 길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말에 귀국하면서 공동체 어른들 뵙기 무서워 다시 깔끔하게 깎았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공동체의 어른들 눈에 머리가 조금만 길다던가, 혹은 반대로 삭발을 한다던가, 아니면 아예 수염을 기른다던가 하는 행위는 반역의 행위 비슷한 것이어서, 젊은 형제들이 만일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머리끄댕이가 잡히던가, 어른 수사님이 따로 한 쪽으로 끌고 가서 수염을 한 올 한 올 손수 뽑아주신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최근 어른 수사님들께서는 젊은 형제들의 이런 모습들을 개성으로 받아들여주셨는지, 아니면 아예 포기를 하셨는지 더 이상 이런 것들에 개의치 않으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올 해 3월부터인가 다시 길러보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아직까지 수도원 한 쪽 구석으로 끌려가는 일만은 면하고 있습니다.

  수염을 기르면서 왜 수염을 기르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사실 여성분들처럼 남자들이 머리를 기른다던지 짧게 깎는다던지, 수염을 기른다던지 하는 것들은 어떤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아주 실리적으로 머리 감기 귀찮아서라던가, 수염 깎기 귀찮아서라던가 하는 의미가 더 크지 않나 하면서도 사실은 ‘뭐, 그냥……’하는 답변이 더 맞지 않나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게을러서요’, ‘안 자르다 보니 자라던데요’, ‘반항심에서요’ 등등 여러 가지 농담 반 섞어가며 대답들을 하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주 어릴 때에 할머님과 함께 기도했던 기도 상 위에 놓여있던 예수님 성화가 크게 작용을 하지 않았나 합니다. 지금도 어린 마음에 예수님이 너무 잘 생기셔서 예수님께 “예수님 닮고 싶어요”라고 기도를 했었던 것이 확연히 기억납니다. 하지만 잘 생긴 모습을 닮고 싶다는 것이지 결코 수도자가 되겠다는 기도는 아니었는데, 하느님께서 기도를 나름대로 다르게 알아주셨는지 아니면 수술이 아니고서는 외모적인 소망은 당신도 도저히 불가능하셨는지, 예수님의 모습을 뒤따라가는 이 삶을 사는 것으로 만족하도록 제 삶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조금 아까 전에 ‘반항’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나름대로 하느님께 대한 반항과 그래도 한 번 예수님 수염을 조금이라도 닮아보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지 않았나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오늘날 정치인들 같은 바리사이들이 시답잖은 말장난으로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고 합니다. 먼저 예수님께 대한 온갖 찬사로 시작한 말장난은 결국 세금 문제를 통하여 예수님을 진퇴양난에 빠지도록 유도합니다. 예수님의 대답 여하에 따라 세금 내는 것을 찬성하면 예수님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동포에 대한 배반자로, 반대로 세금 내는 것을 반대하면 예수님은 로마 제국에 대한 반란분자로 낙인찍힐 상황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재기 넘치는 대답으로 당신을 공격하려는 이들에게는 충격을, 우리 자신에게는 더 깊은 자극을 주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시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리시오”(마태 22,21).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복음이라고 하는 것, 구원의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다스리심, 결국 하느님께서 진정 하느님이 되심이 이미 우리 안에, 우리 가운데에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여전히 나약한 존재이고, 그래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지내다 보니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모시기보다는 세상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데에 급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알아 모시는 것, 결국 하느님과 우리 사람이 서로를 올바로 알고, 나아가 당신을 올바로 알아듣는 우리를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나라라는 상태는 이미 도래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람들이 성숙할 때까지 그 완성을 위해서 진행 중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바리사이에게 황제의 초상과 글자가 새겨져 있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달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안에서 온갖 불의와 불공정으로 하느님을 시험하는 우리 인간에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온갖 부귀와 영화, 재물과 명예입니까? 혹은 나 자신의 얼굴만이 강력하게 새겨져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지금 품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리 가장 깊숙한 곳에 하느님의 얼굴과 하느님의 손가락을 품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요, 당신을 나타낼 글자를 새길 당신 손가락, 성령이 거처하시는 궁전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시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 자신을 바로 보고, 나 자신을 하느님께, 나 자신을 진정 나 자신에게 돌려주라는 말씀입니다. 나 자신이 나 자신을 마주볼 때, 그래서 나 자신이 내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나 자신의 뒤에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바로 볼 때에 나는 나를 나로 알아주시는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하느님을 닮아가는 길이며, 나와 하느님이 서로 알고, 하느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는 길인 것입니다.

  “나는 주님이다. 다른 이가 없다. 나 말고는 다른 신이 없다. 너는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나 너를 무장시킨다”(이사 45,5).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아직 우리는 내가 닮고 싶은 하느님을 찾아나가는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분명 이 길 위에서 우리는 세상의 것을, 혹은 그 어떤 것도 배척하고 오직 나만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리 안에 내가 닮아있는 하느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는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 그러한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돌려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복음과 사도 바오로께서 우리 안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모습과 관련해 기록하신 갈라티아서의 말씀을 묵상하며 한 주를 보냈으면 합니다.

  “이렇게 나는 살아 있지만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갈라 2,20).

  “어린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의 모습이 여러분 안에 갖추어질 때까지 나는 여러분 때문에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갈라 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