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오늘의 강론 > 연중 제28주일 (2011.10.09)

트위터에서 어떤 자매가 저한테 질문을 했습니다. “신부님,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무엇입니까? 기도할 때마다 이 구절에서 막히네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말 참 어렵죠. 영원한 생명은 제가 생각하기로는 하느님과의 합일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존재를 있게 하시고 지탱시키시는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영원한 생명이지요. 우리 삶에서도 남녀가 혼인으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처럼, 하느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얼마나 놀랍고 기쁜 일이지 않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어떤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열고 손님들을 초대하는 예화를 들려주십니다. ‘혼인’이라는 상징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 남녀가 만나 서로를 내어주고 받으면서 둘이 하나로 성장해나가는 삶이 바로 혼인의 삶입니다. ‘너’와 ‘나’라는 두 존재가 혼인 관계를 통해서 ‘우리’라는 한 존재가 되고, 그러면서도 너와 나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혼인의 상징은 하느님과 우리의 일치, 하나됨, 합일을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혼인은 우리 인생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곧, 내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과 내가, 서로가 서로 안에 있는 완전한 일치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것을 맛본 사람은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기쁨과 행복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혼인 잔치에 오라는 임금의 초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고 그냥 자신들의 일을 하러 갑니다. 그냥 흘러가는 자신들의 일상 삶에만 정신이 팔려있습니다. 그들 귀에는 초대의 말씀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귀찮을 따름입니다.

우리의 하루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일주일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일년은 어떻습니까. 너무나도 일상적이지 않습니까. 너무나 평범하고 보통이지 않습니까. 간혹 어떤 특별한 일도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일상일 뿐입니다. 그리 특별하지도 않는 일상의 연속일 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며 살다가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듭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일상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바로 우리의 이러한 일상 속에서 우리를 당신 잔치에, 당신과 하나가 되는 기쁨에 초대하십니다. 내 삶의 자리, 곧 내 자신이 매일 살아가는 이 시간과 이 자리에서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과의 일치가 어떤 특별한 곳이나 특별한 시간에 이루어진다거나, 아니면 저 세상에 가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나와는 상관없는 위대한 성인이나 기도를 잘 하는 영성가한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너무나도 관념화하고 내면화하고 이상화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느님과의 일치가 기쁨이 아니라 하나의 무거운 짐으로 우리를 내리누르게 되고, 많은 경우 우리 자신 속에는 부정적인 죄의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죄의식이 극에 달하면 달할수록 우리 자신을 학대하게 되고, 끝내는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하느님마저 저버리게 됩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서 특별하고 극적이며 영웅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영적인 혼인 잔치는 지금 여기서, 그러니까 우리가 태어났고 숨쉬고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 안에서 시작되고 또 실현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관념이나 이상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 그리고 현재의 내 모습 그대로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내 모습에는 내가 하는 일, 내가 돌보는 사람들과의 관계, 내가 바라보는 것들, 내가 생각하는 것들, 내가 말하는 것들 등 나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나의 약점, 나의 어두운 면들도 포함됩니다. 하느님과의 참된 합일은 일상 생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일상생활 때문에 손상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부딪치는 가장 평범하고 때로는 무미건조한 일들을 처리할 때, 내 자신이 사랑으로 마음을 열면 그 일들이 바로 하느님께 직접 나아가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 필리피서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