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가해

마태 21,33-43

지난 달부터 저희 수도원에서는 관례서를 개정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수사님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습니다. 전례, 영성, 양성, 재정, 조직 등 몇 가지의 큰 주제로 수도원 게시판에 제안을 받고 있는데 하루해가 지나갈수록 게시판은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수사님들이 현재 수도생활에 안주하기 보다는 오히려 원칙을 삼고 변화를 고대하는 마음이 간절하였기에 그 의견들을 제시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의견들 자체가 비판적인 시각에서 성토한 내용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수사님들 나름대로 수도생활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고, 수도승으로서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하나같았습니다. 이런 참여들을 바라보면서 아직 우리 수도원에는 희망이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반면에 오늘 복음에 나온 농부들은 자신들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부족한 변화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악한 농부들에게 놀라운 인내심을 보여준 포도원 주인과 주인에게 위탁받은 포도원 소출을 헌납하지 않으려는 농부들과의 다툼이 벌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밭을 운영하기 위한 기초작업으로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 짜는 확을 만들고 탑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에게 포도원 농장을 임대해주고 타향으로 떠났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포도밭이 풍성하기를 바랐기에 농부들에게 농장을 믿고 맡겼던 것입니다. 그만큼 주인은 여유가 넘치고 다른 사람을 신뢰하였으며 무엇보다 강한 인내심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포도원 관리를 맡은 농부들은 욕심이 좀 과한 이들이었습니다. 포도열매를 거두는 철이 되자 주인은 자신의 종들을 통해 수확한 포도들을 거두어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위임받아 가꾸었던 포도들이 자신의 것인 냥 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런 탓에 주인이 보낸 많은 종들을 때리거나 돌로 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심지어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었던 하나밖에 없는 주인의 아들까지도 포도원 밖으로 내던져 죽여 버렸습니다. 자신들이 차지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거나 빼앗길 수 없었기에 주인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탐욕과 어리석음에 눈이 멀어 자신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현재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하려고만 하고 미래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사실 포도원 주인은 악한 행위를 한 농부들을 끝까지 참고 견디며 기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이 이를 거부한 나머지 주인이 마지막으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악한 자들을 처단하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 농장을 맡기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이 우화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농부들은 이스라엘의 대제관과 율법학자들이며 주인의 상속자인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이들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대제관과 율법학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에게 부활의 기적을 행하시고 그를 성전의 머릿돌로 삼으십니다. 그분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백성을 위해 성전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제자들에게 구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복음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농부들을 바라보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순리적입니다. 그러나 변화에 앞서 먼저 선행되어야할 것은 ‘원칙과 초대의 정신’입니다. 이 두 가지가 중심에 있는 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더라도 흔들림이 없고, 때론 흔들려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기반을 다시 다질 수 있는 반석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교회역사를 보면 교회가 교회답지 않게 살아가지 못할 경우 사도들 시대의 초대교회로 되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하며 섬김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은 하느님이었기에 칼날에 쓰러졌음(루카 21,24)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신앙을 고수하였습니다. 이처럼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도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복음에 나온 농부들처럼 자기 자리에서 주저앉거나 기득권을 행사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옳고 그름에 맞게 복음의 정신대로 더 나은 몫을 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시대의 변화에 맞게 적응하면서 초대 교회 정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aggiornamento 즉 ‘현대세계에로의 적응’이라는 모토에 따라 쇄신과 정화로 굳게 닫혀진 교회에서 열린 교회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정신에 입각하여 각 구성원들로 구성되어 있는 공동체들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잘 수렴하고 반영할 수 있는 여유 있고 넓은 마음 또한 요구되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민족을 택하십니다. 그 민족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 자신들이고 우리는 늘 깨어있고 준비되어있는 상태이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찾아오시는 분(마태 24,44)이시기에 언제 어디서건 그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의 삶을 영위할 때 우리는 매사에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굳건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질문에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악한 자들을 가차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칠 다른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