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오늘의 강론 > 연중 제27주일(2011.10.02)

오늘 복음에서도 지난 주일 복음처럼 예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비유로 그들을 빗대어 비판하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포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먹을거리였습니다. 포도주를 담기 때문입니다. 중동 사람들에게 포도주는 일상 삶에서 가장 친숙한 음료였습니다. 식사 때마다 포도주에 물을 타서 음료 대신으로 마셨습니다. 또한 큰 잔치 때에는 품질이 좋은 포도주가 그 중심으로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는 기쁨의 상징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도원은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다고 알 수 있습니다.

어릴 적 생각이 납니다. 우리 집에는 작은 마당이 있고 그 화단에 포도나무가 마당 전체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밤에는 마당에 자리를 깔고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참 행복한 어린 시절 기억입니다. 포도가 익어감에 따라 제 마음도 설레임으로 익어갔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잘 익은 포도를 따서 이웃들한테도 나눠주었습니다. 잎이 다 떨어지면 늦가을에 아버지는 가지치기를 해주시고 포도나무가 겨우네 얼지 않도록 감싸주셨습니다. 아버지의 그 정성어린 마음에 감동하여 포도나무는 해마다 좋은 열매를 내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 혹은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로서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참 열심히 돌보십니다. 포도원 땅을 일구고, 짐승이나 도둑한테서 보호하려고 울타리를 둘러치고 망대를 세우고 포도수확을 위해 확을 팠습니다. 얼마나 제반 준비를 철저히 하는 아버지이십니까. 포도원 주인이신 하느님의 원의는 좋은 포도를 얻는 것입니다. 이제 소작인들에게 당신 포도밭을 맡깁니다. 여기서 소작인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이들의 임무는 포도원인 하느님 백성을 잘 다스리고 하느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소작인들인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스라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에서 나온 것은 질좋은 포도가 아니라 거칠고 거친 들포도뿐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결실을 내었을까요? 그 이유는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소유를 자신들의 소유인양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은 집착입니다. 집착은 잘못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사랑하고 좋아하는데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집착하고 있는 동안에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얽어매는 사슬입니다. 거기에 두 사람 다 매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집착을 혼동하는 무지가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위 전체를, 아니 다른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잘못된 길로 이끌고 맙니다. 그래서 욕심 중에 가장 무서운 욕심은 스스로 욕심인지 모를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는지 여부조차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욕심 때문에 악한 소작인들은 살인까지 그것도 포도원 주인의 외아들까지 죽여버리고 맙니다. 그 집착의 결과는 소작인 자신들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멸망으로 끝나고 맙니다. 비참한 최후입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가정, 본당, 수도원)가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가꾸고 돌보시는 포도원입니다. 우리 각자는 이 포도원의 소작인들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의 경고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아닙니다. 욕심에는 방향성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세상에 욕심이라 불릴만한 일은 그다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닌 상대와 그 주변을 돌아보면 달라집니다. 과연 우리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 아버지를 향합니까? 아니면 내 자신만을 향해 있습니까?

오늘 우리 공동체 봉사자들에게 감사장과 임명장을 수여합니다. 이분들은 하느님 백성의 소작인, 다시 말해서 머슴들입니다. 저 자신이나 총회장님을 비롯한 봉사자들은 하느님 백성의 종복입니다. 우리 사이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 향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일반 회사나 사회 조직에서 하는 일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활동을 많이 했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행위(봉사) 안에서 우리가 쏟는 사랑의 밀도입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6-7).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