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오늘의 강론 > 연중 제26주일 (2011.09.2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필리비에 사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를 간직하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시 백성의 지도자들인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완고한 머리를 비판하는 말이었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백성들의 원로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은 참으로 고귀한 자칭 의인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법을 참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서 우러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고발하고 판단하였습니다. 하느님 대신에 심판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의 허물을 단죄하였습니다. 그들은 나약한 인간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흑과 백, 옳음과 그름밖에는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머리밖에는 없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 공감이라는 것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예수님 시대 당시에 죄인이라고 취급받던 세리와 창녀는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사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심과 욕망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욕심과 욕망의 끝은 고통이라는 사실을. 이 사람들은 인간 욕심의 극단까지 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었고, 이 고통 속에서 인간의 한계와 나약성을 뻐저리게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약하디 약한 존재입니까. 인간이란 얼마나 허물이 많고 죄많은 존재입니까. 세리와 창녀들은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인간의 그 밑바닥까지 간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은 나약함 안에서 위로를 찾습니다. 고통스런 이러한 삶을 이해해 줄 사람을 찾습니다. 영적인 위로를 목말라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어떤 출판사가 ‘친구’라는 단어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을 공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1등을 차지한 것이 바로 이 내용이었습니다. “친구란 온 세상이 나를 등지고 떠날 때 나를 찾아 올 수 있는 사람이다”입니다. 아름다움과 기쁨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람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사랑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고통 속에서 인간의 한계과 나약성을 참으로 체험한 사람은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인간 고통의 끝자락에 서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약함 안에서 서로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고 고통받고 홀로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 안에서 우리 인간의 한계와 나약성을 당신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어떠한 죄인일지라도 십자가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죄인들이 용서받는 장소입니다. 우리 자신들의 나약함과 허물을 아낌없이 받아주고 죄인들인 우리를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계셔주십니다.

수석사제들을 비롯한 백성의 지도자들은 ‘머리’로 살았습니다. 머리에는 판단만 있지 공감이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 마음 안에서 어떠한 죄인일지라도 위로를 받고 힘을 받고 평화를 얻습니다. 자신이 용서받았다는 확신과 거기에서 오는 기쁨이 죄인을 다시 살게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체험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가장 크게 용서받은 사람만이 가장 많이 사랑합니다. 가장 크게 용서받은 사람만이 가장 많이 이해합니다. 가장 크게 용서받은 사람만이 가장 많이 공감합니다. 가장 크게 용서받은 사람만이 가장 많이 용서해줍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나눈다면, 뜻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지니고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