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오늘의 강론 > 연중 제23주일

아침저녁 시원한 바람이 부니 참 좋습니다. 벌써 넉넉한 가을입니다. 한가위 명절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가을이란 계절은 참 신기합니다, 삶의 본질을 생각하도록 해주니 말입니다. 가을의 문턱에 서서 자연의 생명력을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해 갑니다. 나무의 뿌리는 어머니이신 대지에 뿌리박고 땅에서 끊임없이 영양분을 받아들이고, 꽃과 열매를 다른 생명에게 다시 선사합니다. 생명있는 모든 존재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살아갑니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생명의 차원에서 보면 인간은 독립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한 부분입니다. 사람도 관계 안에서 다른 사람과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깨를 기대고 있는 곳에 사람 사는 정이 솟아 나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교회’라는 단어가 두 차례나 나옵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카할’에서 나왔습니다. 그리스어로는 ‘엑클레시아’라고 하고 라틴어로도 같습니다. 그 뜻은 모임, 집회,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어떤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있는 이 성당이 교회는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성당은 그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다른 사회 단체와 다른 점은 하느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뿌리가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듯이 말입니다. 하느님께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다른 일반 단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참으로 하느님께 깊이 닿아있는지를 항상 깨어서 점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교회 공동체 삶의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지체들은 모두 하느님 안에 있지만 다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에도 아픈 데가 있는 것처럼 공동체에도 아프고 약한 지체들이 분명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2007년 수도원에 불이 난 후에 한 가지 약한 곳이 생겼는데, 알레르기성 비염입니다. 조금이라도 기온차가 나면 재채기 코물이 한참동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나옵니다. 재체기 한번 시작되면 정말 죽을 지경으로 힘듭니다. 알레르기 하나 때문에 이렇게 힘이 든데, 공동체에서도 허약하고 아픈 지체가 있다면 공동체 전체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어떤 지체가 아픈 이유는 여러가지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범했을 경우도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입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치유가 필요합니다. 한 지체가 아파 죽겠는데 모른 채 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생명 전체를 무너뜨리는 일일 것입니다. 병약한 지체를 향해 공동체는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 자신을 성장시켜 나갑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사회 조직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서 생명을 키워나가는 공동체입니다.

어떻게 하면 허약한 형제자매를 다시 건강하도록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잘 가르쳐주십니다. 먼저 아무도 모르게 그 아픈 형제를 찾아가서 권유하라고, 그리고 두 세명이, 그리고 교회에 말해서 모두 그에게 권면하라고 하십니다. 베네딕도 규칙서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아빠스는) 연로하고 지혜로운 형제들을 보내어 흔들리는 형제를 거의 남모르게 위로하게 하고, 겸손되어 보속할 수 있도록 권유하며, ‘지나친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위로하게 할 것이다. 그에게 대하여 사랑을 더 베풀 것이며, 모든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규칙 27,2-4). 복음서와 베네딕도 규칙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사랑으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지 않고 인격을 존중하면서 권유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권면과 기도는 커녕 소문을 퍼뜨립니다. 근거없는 악담을 하고 헐뜯고 이간질을 합니다. 말의 힘을 우리는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입놀림이지만 사람에서 사람으로 건너가면서 점점 더 커지고 왜곡되어, 소문은 무서운 공격성을 지니게 됩니다. 마침내 그 대상을 더욱 아프게 하고 소외시켜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말을 퍼뜨린 사람 자신을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자신에 대한 소문이 있을 때 그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당당할 필요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헛된 소문은 연기처럼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이 현존하는 사랑의 공동체, 생명의 자리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과연 내 자신은 하느님께 깊이 뿌리는 내리고 있는 사람인가, 내 자신이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또 내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그 사람을 살리는 말인지 아니면 죽이는 말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자경덕목 제1항에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말을 많이 하면 필요 없는 말이 나온다. 두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 번 생각하고 열라.” 침묵 중에 두 세 사람이 모여 드리는 기도는 우리의 냐약한 곳을 강하게 하고 사랑으로 살게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