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 > 오늘의 강론 > 2011.08.21. 연중 제21주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일부러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지역의 지리적 위치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래아를 떠나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북쪽 끝에 있는 이 지방으로 가신 이유는 무엇이였을까요?

그것은 이제 당신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바로 눈앞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파스카)이라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바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시던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북쪽 끝에 위치한 이 지방에서 출발하여 갈릴래아, 사마리아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유대 지역에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는 여행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이 길은 죽음과 부활, 파스카의 여정이었습니다. 이 길을 가시면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당신이 누구이시며 어떤 길을 가시는 분이신가를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여행을 시작하기 앞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제자들은 사람들이 “엘리야나 예례미아 등 예언자 중 한 분이나 세례자 요한”이라 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더 중요한 것은, 당신께 대한 뭇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당신의 신원을 알게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여기 있는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오늘 여기서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냐고 생각하느냐?” 대답은 우리 자신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배운 것으로, 아니면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대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차원, 교리적 차원에서는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원하시는 대답은 지식적인 대답이 아닙니다.

계란은 그 껍질을 남이 깨면 ‘계란 후라이’가 되지만, 자기 자신이 깨면 ‘병아리’, ‘생명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껍질을 깨면서, 내 자신이 생각해서, 내가 고민해서, 내가 체험해서 당신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대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우리에게 하나의 큰 도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직면해야할 가장 중요한 도전입니다.

‘일생, 삶’이라는 ‘백지’ 위에 ‘선택’이라는 ‘연필’로 답안을 작성해야 합니다. 연필이 몽땅 연필이 되어 다 닳을 때까지 작성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연필심이 부러져서 다시 깍아서 써야 할 때도 있습니다. 또는 ㅤㄸㅏㅀ아 뭉특해진 연필심에 침을 발라가면 써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도저히 답이 안떠올라 머리를 싸매고 끙끙 고민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늘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여야 합니다. 내 전 존재를 통하여 대답을 해야 하는 도전입니다. 그런데 이 대답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모범 답안이 없습니다. 또 개인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남의 답을 훔쳐 볼 수(컨닝)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시고는 감탄하시면서, “시몬 바르요나,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례와 견진을 받을 때 이미, 그리고 주일 성찬례 때마다 하느님 아버지의 성령께서 영감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답을 적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병아리는 혼자 알을 깨지 못합니다. 어미 닭이 알 한곳을 톡톡 쪼아서 깨 주어야 자기 자신이 알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우리가 껍질을 깰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주님의 질문은, 이런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인 내가, 너 자신에게, 너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분이십니까?

세상에서는 똑같은 삶을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힘들어하고 또 어떤 사람은 행복해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똑같은 환경인데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수도원과 감옥은 같습니다. 옛 소련에서 수많은 정치범들을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감옥은 옛 수도원 건물이었다고 합니다. 수도원의 구조와 감옥의 구조는 거의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수도원과 감옥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수도원은 감사드리는 곳이고 감옥은 불만이 가득한 곳이라는 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시는 분이십니까? 감사와 기쁨으로 다가오십니까, 아니면 불만과 고통으로 다가오십니까.

우리 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오늘이라는 백지를 우리 모두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오늘 강론은, 강론을 하고 있는 제 자신과, 강론을 듣고 있는 여러분에 질문으로 끝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답을 이 백지 위에 쓰시겠습니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