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머무르시던 겐네사렛을 떠나 이방인의 지역인 띠로와 시돈으로 가셨습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역뿐만 아니라 이방인 지역에까지 널리 알려진 예언자였습니다(마태 4,23-25). 그래서 그분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와 그분의 말씀도 듣고 병도 낫고자 하였습니다. 띠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만남은 예외적인 만남이었습니다. 그것은 여인 그것도 이방 여인이 예수님께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남자들이 길을 가다가 여자와 마주치는 것조차 수치로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랍삐라고 불리는 예수님께 그것도 이방 여인이 직접 찾아와 먼저 말을 걸었다는 것은 하나의 큰 스캔들이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말을 걸어오는 여인의 말에 침묵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그분 제자들은 그분께 여인을 돌려보내라고 자꾸 재촉합니다.

이에 침묵을 지키시던 예수님께서는 이방 여인에게 “나는 오직 이스라엘 가문의 잃은 양들에게 보냄받았습니다”(마태 15,24)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러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자꾸만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청을 드리는 그녀에게 비수를 꽂고자 그녀의 역린(逆鱗)을 자극합니다.

여기서 역린이란 한비자(韓非子)의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말로서, 한비자(韓非子)는 사람이 용(龍)을 길들여서 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에는 단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고 밝힙니다. 그것은 용의 목 아래에 있는 지름이 한 척 정도 되는 거꾸로 배열된 비늘, 즉 역린(逆鱗)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린을 건드리면 용이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린은 비단 용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역린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역린을 건드리는 것은 그 사람과 더 이상 관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을 인위적으로 자극하는 매우 모욕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욕적인 일이 바로 예수님을 통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신께 다가오는 이들의 아픔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셨던 예수님께서 이방 여인에게는 평소와는 다른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시며 다음과 같은 말로 그녀의 역린을 자극하였던 것입니다.

“자식들이 먹을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마태 15,26)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대답을 통해 이방 여인과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으며 그녀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자신이 이방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아픈 딸이 치유될 수 없다는 이 말은 지금 그녀에게 있어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며 그녀가 지닌 역린을 너무나도 깊이 자극하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이방 여인은 예수님의 모욕적인 말에 정색하거나 화를 내기는커녕 다음과 같은 말로 예수님을 놀라게 합니다.

“예, 주님.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태 15,27)

그녀의 이 같은 대답은 예수님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녀가 지닌 아픔 가운데서도 가장 큰 아픔을 못 본채 하시겠다던 예수님으로부터 그녀는 자신의 믿음을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는 오직 예수님 밖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역린을 자극하는 말을 한 예수님이시지만 그녀에게는 그런 예수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믿음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의 이방 여인은 우리에게 믿음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모른 채 하며 자신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였던 예수님께 대한 오롯한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이방 여인의 믿음을 본받아 예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고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어떠한 모욕도 참아 받으셨던 분이십니다. 이러한 사랑의 주님이 자기 삶의 중심이 될 때 우리는 자신의 역린을 자극하는 이들에게조차 사랑의 마음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밖에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