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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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19주일 - 인 끌레멘스 신부 11-08-07 11:37:0
글쓴이 : 양치기 조회 : 2526   
제가 서울에 있을 때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한강 위에 떠 있는 오리배를 보면서 “언제 한번 저걸 타봐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리가 물에 떠 있는 이유를 아십니까? 고요히 물위에 떠 있는 것 같지만, 쉴새 없이 발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 물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 발이 빠질 때 재빨리 다른 발을 바꿔 내디디면 되는데 말입니다. (농담이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을 체험한 장면이 나옵니다. 기원 전 850년경에 활동한 엘리야 예언자는 투쟁의 예언자였습니다. 하느님의 싸움꾼이었습니다. 내적 불이 활활 타는 용사였습니다. 북이스라엘 왕국 아합 왕과 이세벨 여왕의 우상 숭배에 적극적으로 대항했습니다. 카르멜 산에서 바알을 섬기는 예언자들과 대결해서 바알 예언자 450명을 죽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이세벨 여왕의 노여움을 사서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죽음의 칼날 앞에서 예언자의 내적 불은 꺼질 듯 약해졌습니다. 풍전등화 상태였습니다. 그는 호렙산으로 가 거기서 다시 하느님 체험을 합니다. 하느님은 동굴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엘리야에게 당신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느님은 바위를 부쉴 정도의 강력한 태풍 속에서도, 지진 속에서도, 불 속에서도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산들바람 속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의 평화가 엘리야 예언자를 감쌌습니다. 평화 안에서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에도 가장 먼저 건네신 말씀이 “두려워하지 마라”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폭풍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에 탄 제자들에게 주님은 첫 말씀으로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십니다.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는 참으로 열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제자단의 리더였고 예수님을 위해서는 물불을 안가리는 저돌적이고도 우직한 제자였습니다. 그 이름처럼 정말 바위같이 듬직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사람 안에는 예언자 엘리야처럼 불이 있었습니다. 이 열정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용기 있게 주님을 향해 호수 위를 걸어갑니다. 그러나 파도와 바람이 덮치는 것을 보고는 이내 겁을 집어먹고 물에 빠지고 맙니다. 이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질타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물은 두렵고 무서운 대상이었습니다. 불이 지나가면 몇 가지 건질 것은 있지만, 물이 지나가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나 이번 폭우 때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물은 무서운 세력, 모든 것을 몽땅 집어 삼키는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물을 딛고, 그것도 거센 바람에 미쳐날뛰는 물을 딛고 제자들에게 걸어오십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나다”라고 하신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털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시어 당신의 이름을 알리신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야훼’  ‘나는 있는 자 그로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나다’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나다”라는 말씀은, 신적인 존재로서의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선언인 것입니다. 세상 만물이 살아 있는 존재로 있게 하는 근원적인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엘리야나 베드로처럼 열정적으로 주님을 따르기로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쓰나미가 갑자기 들이닥칠 때, 아무리 우리가 열심한 신앙인이라도 걱정과 근심의 심연 속에 빠져 불안해 합니다. 더 나아가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가?”, “난 혼자이다”, “난 버림받았다”고 의심하고 자책까지 합니다. 어떤 일 때문에 제 자신이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적이 있었습니다. 어디에도 나를 구해줄 사람이 없었고 어딜 봐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물속에 빠져 “주님, 살려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였던 베드로처럼, 주님께 계속 간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안심하여라”라는 음성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렸습니다. 그러고 제 마음 속에는 내적 평화가 찾아왔음을 느꼈습니다. 물론 일도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이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삶을 그 기초에서부터 떠 받쳐주시는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그 기초에서 떠 받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인생이란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심한 풍랑에 시달리더라도,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최종 목적지인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향하여 한발 한발 내딛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늘 손을 내밀어주시고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하고 용기를 불어주십니다. 더 나아가 실의와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우리 먼저 사랑의 손을 내밉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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