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사도 성 베네딕도 대축일에 형제들 앞에서 강론을 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두 번째로 강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베네딕도 수도 공동체는 어떤 곳인가? 도대체 이 ‘베씨’ 집안은 어떤 곳인지 생각해 본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평생 살아가는 이곳은 우리의 ‘집’이기도 하고, 또한 지켜야 할 수도규칙이 있다는 의미에서 ‘학교’와도 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씨 집안’의 이 집은 그냥 집이 아니라, “하느님의 집”이고, 그냥 학교가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원 100주년 때 잠시 귀국했었지만, 5년만에 다시 찾은 우리 공동체는 여러모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2년 전에 마무리 공사로 어수선하기만 했던 이곳이, 이제는 나무도 자기 자리를 잡은 듯 하고, 앙상하던 잔디도 제 빛깔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큼직한 성당엔 주일 마다 찾아오는 신자들을 넉넉히 받아내고도 남습니다. 작년에 설치한 오르간은 웅장하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그 선율에 맞추어 저녁기도를 노래하는, 예전에는 언제 그렇게 될까 상상만 했던 일들이, 이제 거의 현실화가 되어 있습니다.

 

5년 동안 새로 입회한 형제들이 마치 무사의 손에 든 화살 처럼, 든든하게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써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복도 길이가 더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준비하는 스타씨오 때 복도 끝까지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참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말을 들어보니까, 수도원 화재 이후에는 수도원을 떠나는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어제 저녁 축하식에서 본 것 처럼, 그렇게 뽁딱거리며, 오손도손, 아웅다웅 살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교구 신부님들이 수도원에 피정을 하러 오는 경우가 크게 많지 않았었는데, 두 달 정도 보니까 끊임없이 교구 신부님들이 우리와 함께 지내며 피정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10명, 20명의 소그룹 피정도 끊임없이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그렇게 느끼던 느끼지 않던 간에, ‘필시 무슨 향기가 나긴 나는 모양이다’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요즘은 미군부대 고엽제 문제 때문에, 평소에 신부를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람들이나, 성당은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수도원을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이곳은 정말 우리의 집이 아니라, ‘하느님의 집’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외국 생활 중에 방학 때 마다 이 수도원 저 수도원으로 돌아다니는 기로바꾸스 생활을 하다 보니, 방문하는 수도원을 조금만 접해보면 그 집안에 대해서 이런 저런 느낌이 척~ 올 때가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이 활기찬 집안들은 일단 손님 환대 부터 남 다릅니다. 그 공동체의 아빠스님이나 손님 담당자에게 메일이나 팩스로, ‘가서 생활해도 됩니까?‘ 하고 보내기만 하면 즉시 답장이 옵니다. 빠르게는 3,4시간, 늦어도 하루 이내에, 아빠스님이나 손님담당자로 부터 답장이 옵니다. 답도 간결합니다. ‘당연히 와도 되지. 오는 길 알고 있지?‘

 

그 반대로 공동체 생활의 활기가 떨어진 집안에서는 기다리다 지칠 때 쯤 연락이 옵니다. 그런데, 그 연락도 '왜 올려고 하는지?' 안 그러면, 내가 사는 수도원 원장 신부님에게 연락해서 진짜 그곳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왜 우리 공동체를 방문하려고 하는지 확인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공동체들도 열심히 기도생활 하며 살고 있지만, 한결 같이 성소자가 없어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그런 공동체였습니다.

 

그리고 잘 되는 공동체는 젊은 수도자들 뿐만 아니라, 연로하신 분들도 왕성하게 움직이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많지 않은 숫자의 공동체지만, 저녁 시간에 둘러 앉아 할 이야기들이 많은 집안들이었습니다. 이런 활력은 자연히 밖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수도원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방문하고, 성소자들도 계속 찾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연로하신 형제들과 젊은 형제들이 어울려서 그와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제 저녁 우리 공동체는, 올해 각종 기념일을 맞는 우리 형제들을 합동으로 축하를 하였습니다. 서원 70주년을 맞이하시는 아흔 여덟의 이 미카엘 수사님, 서원 40주년을 맞이하시는 김 스테파노 수사님, 이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 안 비오 수사님, 서원 25주년을 맞이하시는 이 프란치스코 신부님, 이 다미아노 신부님, 선 라파엘 신부님, 그리고, 선교 파견 50주년을 맞이하셔서, 까칠한 독일남자, 까독남에서, 이제는 '왜관남자'가 되신 장 엘마르 신부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서원 금경축을 맞이하시는 현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이 니콜라오 수사님.

현 바르톨로메오 신부님과는 하나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6,7년 전에 가실 성당에 판공성사를 주러 간 적이 있습니다. 신자들은 많지 않지만, 신자들이 본당 신부 이외의 다른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게 하려는 신부님의 배려였습니다. 판공을 마치고, 사제관에서 차를 한 잔 마신 다음, 수도원으로 돌아올려는데, 나를 캄캄한 성당 안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불을 켜지 않으셔서, 더듬거리며 성당 의자에 앉았는데, ‘신부님 여기서 눈 뜨고 10분만 계셔 보세요’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용히 성당에 앉아 있는 그 사이에, 내 눈은 점점 어둠에 익숙해져 주위를 환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들어 위를 보니, 파라핀으로 불을 켜는 성체등이 조용히 일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불빛 하나 때문에 주위가 마치 대낮처럼 환하게 보였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가실 성당 100주년사 발간 기념식이 있어서 방문했었는데, 지금도 그 성체등은 여전히 편리한 전기불이 아니라, 파라핀으로 켜져 있었습니다. 일 주일에 세 번은 그 높은 곳에 있는 등에 파라핀을 채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것을 보면서 신부님의 진면목을 잘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 70세를 맞이하시는 신부님의 새로운 인생도 기대가 됩니다.

 

이 니콜라오 수사님과의 인연은 92년 저의 입회 때 부터였습니다. 방학 때 신학교에서 마오로관으로 돌아오자 마자, 막 시작한 논농사에 투입되었습니다. 농약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 대신 그 많은 잡초들을 수사들이 다 투입되어 해치워야 했습니다. 이전에 논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 일을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 이것이 수도생활이구나' 하면서 석달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수사님은 늘 우리와 함께, 우리 보다 오래 잡초 뽑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배 수사님들과 함께 일을 했던 힘들지만, 행복했던 기억을 내 수도생활 안에 기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사님은 수도원 큰 행사 후에 있는 젊은 형제들의 뒷풀이에도 잘 참석하셔서, 젊은 형제들과 잘 어울리셨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들은, 수사님의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는데, 나중에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예전의 비투스 수사님이나, 필립보 수사님 처럼, 기름걸레 들고 수도원 복도를 청소하는 것이랍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저의 안목으로 봤을 때, 훨칠하신 큰 키에, 흰머리를 하시고, 밀대를 들고 청소를 하시는 모습이 정말 명장면이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그런 모습들을 후배들이 볼 수 있는 영예를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가 22,27)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처럼, 공동체와 형제들, 신자들을 위하여 살아오신, 신부님, 수사님을 존경하며, 기도합니다.

 

* 신고하기 창닫기
* 받는이 : friar003 ycspb incle * 이게시물을 신고할 사유를 간략하게 적어주세요.
* 참고1 : 코멘트 신고일 경우 코멘트의 작성자와 내용을 간략하게 표기해 주세요.
* 참고2 : 신고한 내용이 장난 , 허위 등의 부당한 신고일 경우 활동에 불이익을 당할수 있습니다.        

제목: 2011.07.12 사부 성 베네딕도 대축일 - 박 블라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admin) 위치 : 신고사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