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교회가 창립되고 이제 교회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설명하는 말은 여러 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친교’(Koinonia)라는 말이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친교입니다. 서로 통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너와 내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하느님의 영 안에서 너와 나는 하나라는 이 기초가 교회를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살아있는 성장하는 공동체로 만듭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는 소통의 부제, 친교의 단절에 아파하고 있습니다. 4대강 문제, 등록금 문제, 빈부의 문제, 고엽제 문제 등 모든 갈등도 근본적으로 친교의 단절에서 옵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단체나 모두 소통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소통은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 문을 걸어 잠가 놓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제자들 한 가운데 오셔서, 당당히 서서, “그대들에게 평화!” 하고 첫 인사를 건네시고는 숨을 불어넣으시면서 ‘성령을 받으시오’ 하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문을 걸어놓고 숨어있다는 것은 바깥세상과의 단절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두려움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우리 자신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외부에서 나한테 들어오는 갖가지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외부에서 오는 정보를 내 자신이 왜곡해서 수집합니다. 그것은 내면 안에 숨어있는 내 욕심, 분노 때문일 것입니다. 욕심은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일 것입니다. 사랑의 욕구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애착, 집착이 됩니다. 이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 내 안에서는 분노가 분출합니다. 분노는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의 표현이며 무언가를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는 내적 두려움의 다른 표현입니다. 사실 우리가 홀로 있다면 어떠한 욕심도 분노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 안에서 나의 욕구와 분노가 표출되는 것입니다. 분노를 표출하면 할수록 욕구의 지배를 받아 더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관계는 더 끊어지고 맙니다. 이 단절은 내적인 단절도 가져옵니다. 하느님과의 단절, 그리고 참된 자기 자신과의 단절로 이어집니다. 나의 부정적인 욕심(욕구)와 분노는 이처럼 우리 자신을 형제자매들에게서, 하느님에게서, 그리고 참된 내 자신에게서 떼어놓고 고립과 고독과 단절 속에서 신음하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내적인 평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생할 때만이 평화가 꽃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받으시오” 하시면서 당신 숨을 불어넣어주십니다.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이 표현은 세상 창조 때 하느님께서 첫 인간 아담의 코에 숨을 불어넣으셨던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성령의 오심은 첫 창조의 그 놀라운 힘을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 체험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새로운 사람으로 창조하시고 매일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오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소통하는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성령은 7가지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아니, 이미 받았습니다. 지혜와 깨달음의 성령과, 의견과 굳셈의 성령과, 지식과 효성의 성령, 그리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의 성령입니다. 성령의 7가지 은사 가운데 ‘지식의 영’(scientia)을 청해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배움을 통해서 우리가 축척하는 세상의 지식이 아닙니다. 지식, 곧 앎의 은사는 천상적 지식입니다. 선과 악을 아는 은혜이고, "예와 아니오"를 아는 은혜이며, 좋고 나쁨을 아는 은혜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은혜이며, 어둠에 속하는지 빛에 속하는지를 아는 은혜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사건을 판단하는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을 바로 알게 하는 지식입니다. 지식의 은사를 통해서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밝게 비추어 우선 우리 자신이 우리의 어두운 면을 보게 하십니다. 천상 지식으로 나 자신을 바로 알기 시작할 때 우리 내면의 변화는 시작됩니다. 성령은 우리의 부정적이고 이기적인 욕구를 ‘공동선’을 위한 열망을 바꾸어 주시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사랑의 열정으로 불타게 해 주십니다.

부속가에서 우리는 노래했습니다. “오소서, 성령이시여, 굳은 마음 풀어 주고, 차디찬 맘 데우시고, 빗나간 길 바루소서.” 이 기도를 매 순간 한다면 성령께서 분명 우리를 내면에서부터 하느님과의 친교, 나 자신과의 친교,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친교로 나아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