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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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부활 제4주일 - 인 끌레멘스 신부 11-05-15 11:54:5
글쓴이 : 양치기 조회 : 2369   
오늘은 착한 목자 주일이며 성소주일입니다. 오늘만 되면 어릴 적 성소주일 행사가 기억납니다. 며칠 전 마침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김치오 베네딕도와 동료 순교자 38위’ 시복시성 법정이 서울 가톨릭 대학에서 열려서 신학교에 가보았습니다. 신학교는 성소주일 행사로 운동장에 시설물들을 세우는 등 분주했습니다. 어릴 때 성소주일이면 아이들과 함께 그곳에서 뛰어놀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렇게 넓고 컸던 신학교 운동장이 무척 작아보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우리 모두의 목자이십니다. 보통 목자가 아니라 ‘착한 목자’(Bonus Pastor)이십니다. 목자의 유일한 생각은 양들을 좋은 풀과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여, 양들을 먹이고 양육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착한 목자로서의 당신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의 상태를 면밀히 보살핍니다. 그 양이 어디에 있는지, 어딜 가고 있는지, 어디가 아픈지, 성격은 어떤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압니다. 오늘 복음에서 “안다”는 단어가 많이 눈에 띕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안다”는 동사는 지식의 차원을 넘어 대상을 전체적으로, 그러니까 영육 모두를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품고 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목자와 양은 서로에 대한 앎을 통해서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압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자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따라갑니다.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목자의 목소리를 참으로 아는 양들은 어떠한 사람이고, 또 목자를 따라가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첫째,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보다 더 내 자신의 됨됨이를 잘 알고 계시는 주님께 감사드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나의 장점과 단점, 나의 성격,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를 잘 알고 품어주시고 인도하시고 양육하시는 그분을 참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데리고 나갑니다.” 여기서 ‘이름’은 그 사람 전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 자체를 말합니다.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목자이신 주님은 내 자신이 나를 아는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나를 아시고 이해하시고 품어주시는 주님을, 우리의 참 목자이신 주님을 고마운 마음으로 바라봅시다. 이러한 사람은 더 나아가 자신의 허물과 약점과 모난 자신을 품어주고 돌보아주고 참아주는 공동체 형제들에게 감사드리게 됩니다.  

둘째, 자신의 뿌리, 곧 자신의 정체성을 항상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양들인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묻고 찾는 사람입니다. 어떤 제자가 원로에게 묻습니다. “수도자는 누구입니까?” 원로는 답합니다. “매일 살면서 ‘수도자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묻는 사람이 수도자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지는 수도자는 깨어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일과 활동에 파묻혀 자신이 누구인지도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면 참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혹시 내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닌가 하고 반성합니다.

셋째, 자기 양성에 투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목자로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자기 양성에 매진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양성기의 형제들도 있지만, 양성은 죽을 때까지 지속해야 성장입니다. 종신서원과 사제서품을 받았다고 양성은 완료된 것이 아닙니다. 성장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생명은 생을 다할 때까지 성장을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경덕목’ 두 번째 덕목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입의 1퍼센트를 책 사는데 투자하라. 옷이 해지면 입을 수 없어 버리게 되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고 있다.” 일상 삶에 영감을 주고, 생각과 말과 행위를 올바르게 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물론 책 가운데서 성경은 그 중심을 차지합니다. 책을 잡고 읽으십니다. 시간을 내어 좋을 읽고 양식으로 삼아 우리 자신을 양육합시다.

넷째, 영성 생활에 정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고 내 자신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상 그리스도께서는 신비 그 자체이십니다. 내 자신이 그분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나는 내 자신을 속이는 사람일 뿐입니다. ‘내 자신이 주님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참된 깨달음입니다. 내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깨닫는 길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기도를 기초로 살아가는 영성 삶은 참된 깨달음, 참된 앎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과연 내 자신은 기도에 충실하고 기도에 열정적인 사람인지를 반성합니다.

목자이신 주님과 형제들에게 감사드리고, 수도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자기 성장의 길로 걸어가고, 기도의 삶으로 매진하는 사람은, 이제 ‘왜’라고 묻지 않고 ‘어떻게’로 살아갑니다. 목자를 따르는 사람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열정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모양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남은 일입니다. 내일은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사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기도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저희에게 성령의 지혜를 주시어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좋은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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