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열정(passio)은 수난(passio)의 길, 파스카의 길이다

행복은 인간적으로 보면 내 의지대로 내 자유대로 선택하고 살면 행복 그 자체이 다. 내 뜻을 꺾고 다른 뜻을 따르는 것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이 내 뜻과는 다를 때 내 계획을 버리고 하느님을 뜻을 따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보면 죽음과 같다. 죽을 맛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나의 행복임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에 자기 뜻을 내맡긴다는 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길, 곧 파스카의 길임을 잘 안다. 하느님의 뜻을 우리가 선택할 때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르 는 사람, 참다운 제자가 된다.

올해는 마태오에서 주님의 수난기를 우리는 들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예수님의 열망(passio)는 수난(passio)에서 완성되었다. 열정이라는 라틴말 Passio 와 수난이라는 라틴말 Passio는 동일하다. 그래서 열정과 수난은 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이 관계가 잘 드러난다. 예수께서 체포당하실 때 핵심 단어가 "넘겨주다"(paradidonai/tradere)이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오셔서 그들에게(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되었다. 시간이 되어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traditur Filius hominis).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me tradit) 자가 가까이 왔다" (마르 14,41-42). 이것이 겟세마니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예수님은 넘겨지셨다. 또한 유다도 예수님을 넘겨주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tradidit eum) 그들을 찾아 갔다 (마태 10,4 참조).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똑같은 단어가 유다 뿐 아니라 하느님께도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넘겨주신 tradidit illum)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로마 8,32). 따라서 "넘겨주다"라는 말은 예수님의 삶에서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한다. 이것에서 예수님의 삶이 철저히 둘로 나누어진다. 예수님의 생애에서 첫 번째 부분은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면에서 주도권을 갖고 계셨다. 말씀하셨으며 선포하셨고 치유하셨으며 여행도 하셨다. 그러나 넘겨지자마자, 어떤 일에서든 당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셨다. 체포되셨고, 대제관과 빌라도 앞에 끌려갔다. 매질과 가시관을 비롯 하여 십자가를 지고 끝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수난의 의미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면서 "다 이루어졌다" (요한 19,30)고 말씀하실 때, 단순히 "나는 하고 싶었던 모든 일을 원 없이 다 했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나에게 행해져야 하는 일이나 에게 행해지도록 허락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렇다, 예수님은 단순히 수동적으 로 아버지의 뜻에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능동적으로 허용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기다림의 신비를 보게 된다. 남 이 행동하도록 기다리는 것이 수난의 신비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열정은 하느님과 형제들의 의지에 나를 능동적으로 내맡기다는 뜻이 된다. 내가 하기 싫지만 남이 나한테 행동하도록 기다린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자기 포기를 말한다. 선택에는 우선 순위가 있다. 좋지 않은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복잡하기는 하지만 이것 이 현실입니다. 포기하는 것을 통해서 좀 더 나은 포괄적인 통합을 이루는 것이 다. 포기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때로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어떻게 희생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남의 의지에 나를 내맡기는 희생을 요구하신 이유는 크고 깊은 친교를 원 하시기 때문이다. 포기하는 것은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더 사랑하는 것이다. 포기하는 것 은 더 깊은 친교를 맺는다는 것이다. 매 순간에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성령께서 거처하시는 우리 마음이 원하는 것으로 가자. 마음이 편한 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도 편하게 한다.

마르 10,28-30: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 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 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 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평탄한 넓고 좋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포기를 하면 현세에서도 또 내세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죽기 직전에 포기를 통해 얻은 행복을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천국에서 내 원의를 이루어 주셔야 합니다. 나는 지상에서 결코 내 뜻대 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마지막 남긴 말씀 13.7.2).

서울 수도원에서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