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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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주님공현대축일(나해): 박 안셀모 신부 07-10-14 00:04: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181   
2003. 1. 5.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일반적으로 베네딕도회 수도승의 삶을 하느님을 찾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고 세상에서 물러나 수도원 안에 머물면서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고 일하는 단순한 삶을 통해 하느님을 찾아 나가는 삶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찾는 삶은 비단 수도자의 삶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이 추구해야 할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아가기만 해야 하고 그분을 만날 수는 없단 말인가?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이 하느님은 숨어 계시고 우리는 그분을 찾아 나서야만 한단 말인가? 때로는 기도와 미사, 형제적 사랑을 통해 그리고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찾는다고 말하고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면서도 때로는 마음이 무디어져 주님을 찾는다는 것은 그저 저 멀리 있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 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을 통해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람들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나는 진정 삶을 통해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는가?”라는 반성을 하게하고 때로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느님께서 드러나고 있습니까?
처음의 열정을 식어 지고, 타성에 젖어 무디어진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공현 대축일을 맞아 오늘 복음을 통해 이런 질문들을 풀어 나가도록 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주님의 공현 대축일입니다.
동방 점성가의 방문과 요르단 강에서의 주님 세례, 가나 혼인잔치를 통해 주님께서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나심을 기념합니다. 방금 복음에서 들은 동방 점성가의 방문 이야기의 핵심은, 그들이 경배한 아기가 이 이방의 왕들이 찾아와 경배할 정도로 위대한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모든 민족의 임금이시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이야기를 좀더 깊이 묵상하다보면 우리가 앞서 질문한 “주님을 찾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 안에 그분을 찾는데 방해되는 것이 무엇이며, 그분을 드러내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복음 안으로 함께 들어가 보도록 합시다.
가장 먼저 우리는 한 아기를 놓고 대조되는 두 무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동방 점성가들과 헤로데입니다.

이방민족이었던 동방의 점성가들은 모호하기만 한 자신들의 지식과 성서 말씀에 따라 별의 인도로 새로운 왕을 찾아 나서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모한 듯한 기나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마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납득이 안가는 수도생활을 시작하듯이 말입니다.
사막과 숲, 강을 건너는 고단한 여행과 위기의 상황들, 그리고 미지의 별을 쫓는 여행에 대한 불신 등은 그들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포기하고 다시 안락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일으켰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리를 찾고자하는 그들의 열망과 강한 별의 비추임은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을 것입니다.

‘별의 인도가 그들을 바로 베들레헴으로 가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의문이 남지만, 성서는 그들이 헤로데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왔다고 증언합니다.
이 예루살렘의 방문은 어쩌면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관의 정화를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처음 그들이 생각했던 새로 태어날 왕은 화려한 궁전에서 금빛 포대기에 싸여 누워있는 그런 아기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들이 세상의 가치기준으로서의 왕을 경배할 생각을 했을 때, 별이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과 비천한 이들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이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할 겸손하신 왕, 초라한 구유에 누우신 왕,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란 명패를 달게 될 그런 왕을 받아들이기 위해 예루살렘을 거쳐야 했는지 모릅니다.
마치 하느님을 찾는 믿는 이들의 여정에서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신 참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누구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하느님을 벗어나는 정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들이 유대의 지도자들로부터 영도자가 태어날 장소는 베들레헴이라는 확증을 듣고 새로운 마음으로 궁전을 나와 베들레헴으로 향하기 시작할 때, 이제 다시 신비로운 별이 그들을 인도하기 시작했고, 별이 아기가 있는 곳에 멈추자 점성가들은 기쁨에 넘쳤습니다. 기나긴 여정에 결실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로운 왕을 뵈올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휘황찬란한 궁전에 누운 아기가 아니라, 겸손한 모습으로 구유에 누운 작고 미소한 아기에게 자신을 몸을 숙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아기에게 자신을 낮추어 엎드려 절한 후에, 그들이 가장 귀하다고 여겨 준비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들의 지방으로 떠나갑니다. 여기서 다른 길은 다른 삶의 방식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을 체험한 이들은 삶의 방식이 변화됩니다. 다른 길을 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방은 자신의 삶의 자리를 뜻합니다. 하느님을 만난 사람이라고 해서 특수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바로 그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방 점성가가 아기에게 드린 경배의 이 여정들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을 찾아 가는 우리의 여정에 좋은 귀감을 줍니다. 성령을 상징하는 듯한 별의 인도, 묵묵히 하느님을 바라고 하루하루 성실히 믿음의 길을 가야하는 우리의 모습과 드러나지 않는 힘든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는 점성가들의 사막 여행, 우리의 잘못된 관념과 하느님을 알아 뵈옵지 못하는 눈을 정화하기 위한 우리의 회개의 삶과 겸손하고 작고 힘없는 아기의 모습에서 구원을 내다보고 자신을 낮추일 수 있는 점성가들의 변화와 신뢰의 모습, 하느님을 체험한 후 자신의 자리에서 새로운 삶의 길을 걷게 되는 우리와 점성가들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아 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반면 헤로데와 산헤드린의 유대지도자들의 모습 역시 우리의 여정에서의 부정적인 모습을 대변해 줍니다. 헤로데와 유대 지도자들은 2000년 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우리 마음의 내면 안에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헤로데의 통치기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헤로데는 자기 아들 가운데 몇몇을 처형시킬 정도로 자신의 왕권에 대항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두려워했습니다. “헤로데의 아들로 사느니보다 그의 돼지로 사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헤로데에게 동방의 점성가들이 눈치없이 찾아 온 것입니다.
헤로데의 간교한 혀는 "가서 그 아기를 잘 찾아보시오. 찾거든 내게도 알려 주시오. 그러면 나도 가서 그분께 경배하겠소" 라고 말합니다.

그의 마음은 위선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완고한 마음, 자신의 영역을 방해하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자리를 고수하고자 하는 마음은 파라오가 사내아기를 학살하듯이 베들레헴의 아기를 학살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의 그러한 행위는 예수님께서 모세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의 새로운 영도자로 추앙하게 만듭니다.
헤로데는 우리 내면 안에 있는 새로운 진리를 거부하려는 마음, 자신의 자리에 집착하는 마음,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신앙생활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헤로데와는 다른 또 다른 한 무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들은 바로 헤로데 곁에 있었던 유대의 대제관들과 율사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성서에 박식했고, 메시아의 도래를 알고 있었고 예언된 장소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러나 그들은 말로써 그것을 선포했을지는 모르지만, 알고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헤로데 곁에서의 안락함, 현실의 편안함에 안주하고 타협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형에 내맡긴 유대지도자들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우리 내면 안에 감추어진 두 마음이나 무뎌진 마음을 대변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심을 기뻐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 감추어진 이러한 상징들은 무엇 보다 우리가 찾는 예수님을 겸손하고 낮추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신 왕, 이방의 왕들조차 경배를 드린 왕, 새로운 모세, 십자가형에 유대인의 왕으로 처형된 새로운 메시아로 선포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우리 내면에 스며있는 주님을 갈망하고 찾는 마음과 거부하고 회피하려는 마음, 알면서도 안주하고 타협하려는 마음에 새로운 왕, 겸손하고 초라함으로 다가오시는 그런 왕을 마음에 새겨줍니다.
주님께서는 요르단의 세례를 통해 자신을 온전히 물 속에 담그셔서 새로운 시작의 모범을 보여 주셨고, 당신의 몸으로 세례수를 축성하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옛 계약을 상징하는 물을 새 계약의 상징인 포도주로 바꾸심으로써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 공현 대축일에 드러난 주님은 초라한 마굿간의 겸손한 왕, 자신과 세상을 정화하시는 분, 새로운 계약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드러나고 있습니까?
동방의 점성가들처럼 진리를 찾아 항구하게 성령의 인도에 자신을 맡기며 묵묵히 주님을 찾아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헤로데와 같이 자신의 세상에 갇혀 있습니까? 혹은 유대 지도자들처럼 알면서도 현실과 타협하며 진리를 외면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나타나심을 기뻐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가 처음에 했던 질문들로 다시 돌아 가 봅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찾아 길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너무도 크신 분, 우리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체험한 하느님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형제들 안에, 공동체 안에, 교회 안에, 세상 안에 참으로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주시는 그분을 뵈옵고, 동방박사들이 그러했듯이 그분의 심오한 뜻에 고개 숙여 경배 드리기 위해 그분을 알아 뵈올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아, 그리고 아직 우리의 눈이 어두워 그분을 뵈올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정화되어 참으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 하느님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을 찾는 삶이란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신 하느님을 뵈올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정화하는 삶이요,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아보기 위해 겸손과 사랑을 배우는 삶인 것입니다. 형제들과 함께 수도원 안에서 살면서 기도하고 일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 안에서 우린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신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끊임없이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며 하느님을 찾아가는 삶이 이 세상에 예수님을 드러내고 증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 겸손한 마음으로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신 당신을 찾아 경배드릴 수 있도록 저희의 눈을 열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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