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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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23주일(가해):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3 23:57: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20   
연중 제23주일(가해) 강론(2002. 9. 8)

"이상적인 공동체"
제1독서: 에제 33,7-9
제 2독서: 로마 13,8-10
복 음: 마태 18,15-20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토마스 머튼은 "인간은 외로운 섬이 아니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는 본성상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사회적인 특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에 대한 반증이기도 합니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또 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함께 사는 것이 언제나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생각도 취향도 기질도 서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활한 공동체 생활을 위해선 세련된 기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들은 이상적인 공동체 형성을 위한 몇 가지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복음을 보면, 공동체 안에서 잘못을 범한 형제에 대한 충고의 방법이 단계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즉 "단둘이 마주하여 꾸짖"는 것입니다(마태 18,15a). 남에게 소문내어 그 형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굴욕감을 주지 않도록 개인적으로 조용히 충고하라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특별히 잘못한 형제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엿보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보다 공동체적인 차원을 띱니다. 만일 그가 듣지 않거든 "둘이나 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일이 확정되도록"하는 것입니다(마태 18,16). 그래도 별 효과가 없을 때, 마지막 단계로 교회에 알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교회란 '공동체 전체', 특별히 '공동체를 대표하여 말할 권한을 지닌 사람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을 경우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여기라고 합니다(마태 18,17b). 이는 공동체로부터의 파문을 뜻합니다.

이 모든 단계들 안에서 우리는 잘못한 형제에 대한 이해와 인내심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의 핵심은 화해를 위한 노력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말을 들으면 그대는 그 교우를 얻은 것입니다"(마태 18,15b). 여기서 충고의 목적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것은 고발에 있지 않고, 바로 "형제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이 과정들은 형제를 얻기 위한 깊은 애정과 사랑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는 결코 완전하고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또 성인들의 공동체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불완전한 죄인들의 공동체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런 공동체 안에는 오류도 잘못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공동체 안에서 누가 잘못을 범할 경우, 충고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특별히 상대가 마음을 닫고 있거나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혹시 누가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할 때, 또 자기 말만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다면, 어떤 조언이나 충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살다보면 대화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독백으로 그칠 경우를 종종 체험합니다. 귀는 굳게 닫아걸고 입만 열어 놓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늘어놓습니다. 이것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좋은 방법이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화는 아닙니다. 이런 일방적인 자세는 원활한 공동체 생활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충고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성장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충고는 한 몸이라는 깊은 공동체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예컨대 몸의 한 지체가 병들면 다른 지체들도 아파하는 것처럼, 공동체 안에 누가 병들었을 때 아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참된 공동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공동체라면 구성원 각자가 깊은 연대감과 그에 따른 연대책임을 느끼는 공동체일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 죄인에게 버릇을 고치라고 타일러 주지 않았을 경우에는...그 사람이 죽은 책임을 나는 너에게 지우리라"(에제 33,8). 서로에 대한 충고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로 충고할 수 없는 공동체는 불행합니다. 성장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동체는 연대의식이 결여된 모래알 집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쓴 소리 없는 공동체는 짐짓 평화로와 보이나 실은 거짓 평화일 수 있습니다. 참된 평화란 깊은 애정과 연대감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충고하는데서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한 몸이라는 연대감에서 나오는 충고는 반드시 사랑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사랑 없는 충고는 오히려 깊은 상처만 남기게 됩니다. 자칫 감정적인 고발이나 화풀이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 없는 공격적인 말들이 얼마나 서로에게 깊은 앙금을 남기는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말들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며, 전혀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랑에 바탕을 둔 애정어린 충고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충고는 일종의 사랑의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서로 사랑하는 것말고는 아무에게도 빚지지 마시오"(로마 13,8)라고 하며 사랑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사랑은 공동체의 지도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을 때, 비로소 형제에 대한 참된 충고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늘 남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때론 아프지만 애정 어린 쓴 소리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쓴 소리를 받아들이는 겸손하고 성숙한 자세도 중요합니다.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은 참으로 성숙하고 겸손한 사람일 것입니다.

함께 사는 것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아름다운 공동체를 형성하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구성원 각자가 남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성숙된 자세,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겸손된 자세, 서로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 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에서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 가운데 나도 있습니다"(마태 18,20).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합니다. 이는 주님을 언제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영광과 뜻만을 찾아야 한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우리의 이름, 곧 우리의 인간적 영광이나 야망을 쫓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에는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 하지 않는 공동체는 존재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이 지배하는 공동체, 서로 애정어린 충고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동체, 또 주님의 영광과 그분의 뜻만을 찾고자 노력하는 공동체. 이런 공동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할 공동체라 생각됩니다. 아마도 이 세상에는 이런 이상적인 공동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소명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있을 때, 우리의 가정 공동체, 수도 공동체,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는 변화되고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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