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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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부활3주일-그리스도와의 만남과 새로운 삶: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3 23:52: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18   
부활 제3주일(2000.5.7,로마)

제1독서: 사도 3,13-15. 17-19
제2독서: 1요한 2,1-5
복 음: 루가 24,35-48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새로운 삶”


1. 예수와의 만남

살다 보면 다양한 만남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만남들은 우리 삶을 변화 시킵니다. 어떤 만남인가에 따라 삶의 질도 방향도 달라지지요. 어떤 만남들은 우리를 성숙시키고 더욱 풍요로운 삶 에로 이끄는가 하면 삶을 황폐화 시키고 그릇된 길로 이끄는 만남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충신을 만난 임금은 성왕이 되고 간신을 만나면 폭군으로 전락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농담 반 진담 반 이런 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 “저와의 만남이 악연이 안되기를 바랍니다 ” 라는 말을 합니다. 이는 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그만큼 자신이 없음을 고백하는 하나의 간접적 표현법일 수 있겠지요. 자신의 존재가 남을 키워주고 성숙시켜 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큰 은총이겠습니까? 만일 어떤 누구와 만난 사람들이 기쁨과 희망을 얻고 그들 삶이 더욱 풍요롭게 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복된 사람, 성인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아는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분이셨다고 봅니다. 그분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 이것은 제자들을 실의와 좌절에서 기쁨과 희망으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느님을 향한 하나의 영적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정 중에 실의와 좌절,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이 만남은 그 어떤 만남 보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만남 없이 우리 영적 여정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만남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다가오심으로서 가능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주어지는 하나의 은총이지요. 이 은총은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를 느끼고 알아보지 못할 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일상 안에, 아주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일들 안에 현존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열린 마음과 낮아지려는 노력이 전제됩니다. 폐쇠된 마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게 합니다. 또한 낮아지려는 노력 없이 그분을 만나기는 힘듭니다. 그분은 낮은 곳에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홀히 하기 쉬운 작은 이들과 작은 일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세상을 향하여 개방된, 보다 많은 것을 품을 수 있는 넓고 여유로운 마음과 겸손한 자세는 참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중요한 통로라 생각됩니다.


2. 새로운 삶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분명 제자들을 변화 시켰습니다. 이 변화는 그들을 새로운 삶, 즉 부활하신 그분을 증거하는 삶에로 이끌었습니다. 이 만남이 이끄는 자연스런 귀결입니다. 오늘 독서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죄의 사함을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삶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삶,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제2독서에서 그것은 일차적으로 계명준수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내 뜻이 아닌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이라 생각됩니다. 이 삶은 부과된 어떤 의무라기 보다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정도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도 바뀌리라 봅니다. 그 사랑은 자연히 그분의 뜻에 따른 삶에로 이끌고,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게 합니다. 제자들의 경우 이 사랑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더욱 깊어지고 확고해졌습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 없이 이러한 삶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분명 많은 이들의 삶을 180도로 바꾸었습니다. 그분과 제대로 만난 사람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별난 행동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헌신짝처럼 과감히 내팽게 치고 별로 가치 없어 보이는 것들을 주어 모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소위 권력에 대한 추구라든지, 재물에 대한 집착, 헛된 명예에 대한 욕구, 안락하고 편안한 삶에 대한 추구 따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분과의 만남 이후 그러한 것들은 더 이상 가치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결단을 하도록 요구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두 손에 꽉 잡아왔던 것들을 놓게 합니다. 이러한 포기 없이는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못된 만남으로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마치 초기의 제자들처럼 엉뚱한 환상에 빠지는 것입니다. 소위 그분과의 인연을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참된 만남은 오히려 우리를 정반대의 길로 이끕니다. 포기의 삶, 낮아지는 삶, 섬기는 삶에로 이끕니다.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만남이 낳는 역설이며 사랑의 신비라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삶이란 버리고 내어주는, 내려가 섬기는 삶이라 생각됩니다.

새로운 삶이란 또한 각자의 부르심에 충실한 삶이라고 봅니다. 인간사에서 누구나 첫 만남의 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차원에서도 첫 만남의 순간, 첫 시작의 순간이 있습니다. 회개의 순간, 사제성소를 받았을 때의 순간, 서품 되던 순간, 서원의 순간 등등이겠지요. 이 모든 순간들은 첫 시작의 순간들입니다. 하느님과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순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게 첫 만남의 순간은 순수합니다. 그리고 열정이 충만합니다. 이때의 순수한 마음과 열정은 우리를 죽는 순간까지 누군가와의 신의를 지키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부르심에 충실한 삶은 초기의 이 순수와 열정을 계속해서 간직해 감으로서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첫 만남도 잊혀지고, 그 때의 순수와 열정도 식어가고 서서히 퇴색되어 갑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때가 끼고 세상 명리에 밝아지고 영적인 무기력과 나태에 빠져 어느새 타성에 젖어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세속적 가치들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궤도 수정이 필요합니다. 주기적으로 첫 만남, 첫 순간을 회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우리 각자의 부르심에 따른 삶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따라서 첫 만남에 대한 기억으로 초기의 순수성과 열정을 간직해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초기의 순수와 열정을 늘 간직하고 그에 따라 살고자 하는 노력, 이것은 특별히 오늘날 우리 사제들, 수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과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선교사명은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열린 마음과 겸손된 자세로 우리에게 다가 오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갈망과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첫 만남 때의 순수와 열정에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를 나날이 새 삶에로 이끌고, 하느님과의 내적인 일치에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왜곡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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